[사설]부패 鈍感症이 부패 키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8일 03시 00분


강희락 전 경찰청장은 2009년 3월 자신의 경찰청장 취임식에서 “인사 청탁에 대해서는 불이익이 돌아갈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면서 “국민의 신뢰와 강한 경찰력은 깨끗함과 정직함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가 건설현장 식당(일명 함바집) 운영권 로비업자 유모 씨(구속 기소)로부터 경찰 승진인사 청탁 명목으로 1억 원대의 금품을 챙긴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길범 전 해양경찰청장은 인천 송도의 건설현장 함바집 운영권과 관련해 3500만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내에서 유 씨로부터 함바집 운영이나 인사 청탁과 관련해 금품을 받은 것으로 거론되는 사람은 이들뿐 아니다. 지방경찰청장 두 명을 비롯해 현직 치안감과 경무관, 총경급 간부 등 10여 명에 이른다. 경찰 말단은 유흥업소와 유착하고 고위직은 함바집 돈을 받는 것이 우리 경찰의 수준이라면 국가의 수치다. 이번 비리에는 전직 장차관급 인사, 전직 공기업 사장, 건설업체 임원도 다수 연루돼 있다. 유 씨는 일부 정치인에게도 후원금 명목으로 돈을 건넸다.

고위 공직자들이 유 씨로부터 받은 돈은 결국 건설 현장 근로자들의 밥값에서 떼어낸 돈이나 다름없다. 잘나가는 식품업계 사업가에다 마당발로 알려진 유 씨의 뇌물 공세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연상시킬 정도여서 얼마나 많은 유력자가 더 관련돼 있는지 알 수 없다.

외국인들은 억대를 예사로 넘는 우리나라의 비리 액수에 “숫자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놀란다. 선진국의 공직자들은 비리에 연루되면 패가망신은 물론이고 평생 감옥에서 썩다시피 하니 감히 염두를 못 낸다. 우리 공직자들은 대형 비리를 저질러도 집행유예를 선고받거나 병보석, 사면 등으로 쉽게 풀려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 같은 부패 둔감증(鈍感症)이 부패를 키우고 있다.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부패라는 바이러스에 굴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말만으로는 부패 청산이 불가능하다. 고위 공직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연루된 비리나 부패 사건에 대해서는 더 엄정한 수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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