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성원]보수의 선진화와 박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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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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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투자의 귀재이자 세계 최고액 기부자의 반열에 들어간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상원의원일 때 만나 시장경제의 승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 조세 피난처를 이용하거나 세무 담당자를 둔 적이 없지만 올해 내가 낼 세금에 적용되는 세율은 우리 회사 안내원보다 낮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국가 재정에서) 가장 큰 몫을 부담해야 도리에 맞다.”

자신의 성공은 미국적 가치라는 기반 위에서 가능했고 미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번 돈을 써야 한다는 철학이다. 영국의 왕족, 귀족들이 전쟁이 나면 앞장서 참전하는 것도 작은 이익을 버리고 영국의 큰 이익을 지킴으로써 결국 자신들의 존재도 정당성을 얻는다는 큰 계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이명박 보수정권에서는 경제와 실용만 강조됐을 뿐 정의 정직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깨졌다. 이것이 위기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운동으로 무장한 보수들이 합리적 진보와 대화와 경쟁을 통해 정책수준을 높이고, 국민 속에 뿌리를 내릴 때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국채보상운동이 한창이던 1907년 대구 지역의 한 여성단체가 낸 성명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해 노예상태를 벗어나 자유나라가 돼서, 언젠가 우리나라도 세계 상등(上等)국가가 되기를 희망하노라.” 기울어가는 나라의 운명 앞에서 한 톨 두 톨 쌀을 모아 언젠가 세계 속의 부강한 일등 국가를 만들자는 절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35년간 일제 식민통치를 겪은 끝에 나라를 되찾고 반세기 만에 경제규모 15위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럼에도 우리가 100년 전 선각자들이 꿈꿨던 상등국가로 올라서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우리의 결단에 따라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안에 그 대답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통일에 성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선진화에도 성공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시대를 주도하는 선진 일류국가로 나갈 것인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고 통일에 실패해 신냉전시대로 역주행하고 삼류국가로 추락할 것인지의 기로에 서 있다는 얘기다. 2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선진통일연합’ 발기인대회에 박 이사장과 생각을 같이하는 나라 원로들과 각계 리더, 젊은 사회운동가 수백 명이 모여든 이유다.

서울대 교수와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서 여의도연구소장과 정책위의장을 지낸 박 이사장은 태생적 보수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는 지금 좌파세력의 반(反)대한민국적 행태 못지않게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 기득권 집단의 낡은 행태를 비판하는 ‘비판적 보수’의 중심에 서 있다.

정부는 천안함을 공격한 북한에 단호한 대응을 천명해놓고도 실천을 주저했다. 고위공직자들은 ‘전쟁이 무섭다’며 평화를 구걸하라는 젊은이들을 일깨우기에 역부족인 병역면제자 일색이다. 한나라당은 자유시장과 자율경쟁이라는 원칙과 서민 포퓰리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일부 기업인은 납세 불이행과 불공정 거래의 단맛에 길들어 있다. 이런 것들을 참을 수 없어 ‘비판적 보수주의자’들이 깃발을 들었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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