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택]충무공 앞에 부끄러운 후예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10일 밤 제주항 인근에서 156t급 해군 고속정 참수리 295호가 어선과 충돌해 침몰하고 탑승원 3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사고는 G20 정상회의 개막 전날 우리 군이 최고 수준의 대비 태세에 들어간 상태에서 일어났다. 해군의 기강 해이를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야간에 일어난 사고라지만 가시(可視)거리가 5.4km나 됐는데 견시병(見視兵)들은 뭘 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고성능이라는 함정 레이더는 왜 무용지물이 됐는지 원인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보고를 받은 함장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국민은 올해 3월 26일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 북한의 기습공격에 대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해해 줬다. 그러나 우리 군의 각종 허위보고와 경계 작전 소홀 및 기강 해이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시하는 국민이 많았다. 국방부는 최원일 함장 등 지휘관 4명을 군 형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했지만 최근 형사 처벌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방부는 군의 사기와 단결을 위해 기소유예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보면 언제든지 북한이 도발하면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군기(軍紀)는 엉망이고 전투력도 형편없는 군대를 흔히 ‘당나라 군대’라고 부른다.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육군참모총장 출신의 이진삼 국회의원(자유선진당)은 우리 군의 기강 해이를 질타하면서 “이대로 가면 군이 옛날 당나라 군대 수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최악의 조건에서도 신출귀몰한 전술 전략으로 ‘23전 23승’의 불패 신화를 이뤄냈다. 지금 같은 해군이라면 충무공의 후예라는 말을 꺼낼 자격조차 없는 것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5월 4일 전군(全軍)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군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쳐 국방을 다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정신무장을 하라고 촉구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이 침몰한 3월 26일을 ‘국군 치욕의 날’로 기억할 것”이라며 정신 재무장을 다짐했지만 고속정이 어선과 충돌해 침몰하는 치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많은 국민은 군을 신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군은 국민을 거듭 배반하고 있다.

권순택 논설위원 maypol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