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 받고 법 만들어주겠다는 건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11일 03시 00분


17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국회는 법인과 단체의 정치후원금을 금지하는 대신에 개인의 소액 다수 후원금을 활성화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업과 이익단체의 로비성 자금이 정치자금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자는 취지였다.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현 서울시장)이 주도했다고 해서 ‘오세훈법’으로 불린다.

이 법 시행 이후 기업이나 이익단체가 합법적으로 정치인에게 의도성이 있는 돈을 제공하기 어려워졌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다수의 개인 명의로 금액을 쪼개 소액기부인 것처럼 후원금을 몰아주는 신종 편법 탈법이 생겨났다. 국회의원들도 점차 죄책감 없이 몰아주기 후원금을 받기 시작했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입법 로비 사건도 그 일각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이 청목회 수사를 계기로 정치자금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소액후원금은 입법 취지에 따라 대가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단서조항을 붙이겠다는 것이다. 대단한 착각이다. 10만 원에는 대가성이 없다고 봐야겠지만 5000만 원을 500명으로 나누어 전달하면 대가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의원들은 10만 원씩 보내는 후원금은 출처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청목회 ‘소액후원금’ 수사에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압수수색과 청목회 및 의원실 회계책임자의 진술을 통해 일부 의원이 입법로비를 벌이기로 작정한 청목회의 후원금임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자금법 위반을 넘어 형법상 뇌물수수죄에 해당하는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의 돈이든 소액후원금이라는 형식을 갖추면 대가성이 없는 것으로 봐줄 것을 명문화하자는 주장은 깨끗한 정치라는 정치개혁 방향에 역행하는 것이다. 검은 로비자금이 정치권에 합법적으로 흘러드는 통로를 만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돈 받고 법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번 기회에 법을 개정하려면 이익단체의 ‘후원금 쪼개기’ 로비 행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확립해야 한다. 기업이나 단체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치자금을 기탁하고 선관위가 배분해주는 대안을 검토할 수도 있다.

근원적 처방은 입법활동 비용 이외에는 돈을 쓰지 않는 ‘저비용 고효율’ 정치구조를 만드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야 원내대표들이 원외 지역위원장의 사무실을 허용할 필요성을 구실 삼아 2004년 폐지됐던 지구당제 부활을 논의하는 것도 돈 안 드는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