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최영훈]경기도의원 몽골댁 이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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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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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으로 승부가 갈린 선거에선 늘 스타가 탄생한다. 여당이 참패한 6·2지방선거도 그랬다. 폐족을 자처했던 친노(親盧) 정치인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집권세력이 내홍에 빠진 반면 민주당은 제1야당의 위상을 회복했다. 선거를 계기로 구도에 변화가 생기면 정치인도 덩달아 명멸한다. 누구나 용틀임하는 이런 거시적인 변화에만 눈길을 빼앗긴다.

1인 4역 맡은 다문화 정치인 1호


그러나 이번 선거는 가녀린 변화의 싹도 틔웠다. 그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할 것 같다. 주인공은 경기도 광역의원으로 당선한 몽골댁 이라 씨(33). ‘다문화 정치인 1호’를 기록했다. 그는 2003년 여행업을 하던 남편과 결혼해 입국했다. 2008년 국적을 취득한 뒤 ‘성남 이씨’ 성을 창시했다. 부를 때 리듬감 있게 이름을 ‘이라’로 지었다. 그는 이틀 전(14일) 경기도 의회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도당회의에도 참석해 안면을 두루 익혔다. 2주 뒤면 가슴에 광역의원 배지도 단다.

당선 후 그는 몽골 언론의 취재를 받는 유명인사가 됐다. 일주일 전 몽골어 민원창구 개통식 땐 주한 몽골대사도 만났다. 그는 “열심히 해 달라”는 대사의 당부에 어깨가 무거웠다. 광역의원에 취임하면 이라 씨는 ‘1인 4역’을 해야 할 판이다. 대학생인 그는 서울출입국 이민자네트워크 부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성남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 활동도 한다. 무엇보다 주부 역할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각오는 했지만 걱정이 많이 된다. 아무래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남편 아이들과 최근 집안일 분담을 얘기했다. 다들 열심히 도와주겠다고 해서 한시름 놓긴 했지만….”

올해로 한국과 몽골은 수교 20주년을 맞았다. 수교 당시 271만 달러에 불과하던 교역량은 지난해 2억 달러로 늘었다. 한류열풍도 거세다. 대장금 방영 때는 길가에 인적이 드물 정도였다. 예로부터 몽골은 우리나라를 ‘솔롱고스’라고 불렀다. 아름다운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이다. 한국인과 몽골인은 생김새가 닮았고 몽고점도 공유한다. 어순도 같다. 심지어 액막이로 ‘개똥이’ 같은 이름을 짓는 관습까지 비슷하다.

시장경제로 전환한 몽골은 연평균 9%대의 높은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한국의 자원안보와 식량안보에 기여할 매력적인 국가다. 하기에 따라선 우리가 한반도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지정학적인 발판도 될 수 있다. 이라 씨를 당선 안정권인 비례대표 1번에 공천한 한나라당 경기도당(위원장 원유철)의 선견에 모처럼 박수를 보내고 싶다. 민주당은 다문화가정 출신을 비례대표로 단 한 명도 공천하지 않았다. 참으로 근시안이다.

몽골뿐만 아니다. 우리 땅에 살러 온 아세안, 중앙아시아 사람을 껴안아야 한다. 그들과 자녀에게 일자리를 나눠주고, 교육의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제2, 제3의 이라 씨가 나오도록 정치 참여의 기회도 넓혀야 한다. 다문화사회는 깨어지기 쉬운 유리병이다. 비온 뒤 나타났다 홀연 사라지는 무지개와도 같다. 그래서 오래 공들이고, 애정과 관심을 갖고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솔롱고스 ‘무지개의 나라’를 위해


인구사회학자들은 다문화를 ‘발등의 불’로 여긴다. 우리 사회엔 고교 적령기의 다문화 자녀 2000여 명이 학교 문밖에 있다. 이들을 방치하면 10년 뒤 프랑스판 인종폭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 사회통합위원회 고건 위원장은 해결책으로 국제다솜학교를 제안했다. 현장감이 풍기는 그의 실천 대안은 돋보인다. 노동부와 서울시 경기도 등 다문화인구가 많은 광역단체들이 그의 제안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다문화사회엔 이같이 빛과 그늘이 공존한다. 붕어빵엔 붕어가 없다. 그러나 몽골인에게 친근한 나라인 ‘솔롱고스’에 빨주노초파남보가 잘 어우러진 다문화 무지개가 없어선 안 된다. 저출산·고령화의 질곡에 갇힌 우리에게 다문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최영훈 편집국 부국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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