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성희]설득하고 싶으면 설득당할 줄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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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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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부재 탓만해선 안돼
설득 막고있는 의심과 거짓말

작은 마을에 유대인 랍비가 살았다. 어느 날 동네 사람이 그를 찾아와 억울함을 하소연했다. 자기 집 정원에 심어놓은 배나무가 가지를 뻗어 이웃집으로 넘어갔는데 그 가지에서 열린 배를 이웃이 따 먹으니 절도가 아니고 뭐냐는 말이다. 랍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 말이 맞소”라고 했다.

문제의 이웃이 랍비를 찾아와 또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옆집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바람에 농작물을 심을 수 없었다며 머리 위로 떨어진 배를 주워서 배고픈 자식에게 주었는데 그게 무슨 해가 되느냐는 논리였다. 말을 들은 랍비는 또 고개를 끄덕이며 “당신 말이 맞소”라고 했다. 옆에서 그 모양을 지켜본 아내가 한마디 했다. “어떻게 양쪽이 다 옳은가요? 한쪽이 잘했으면 다른 한쪽이 잘못한 거지.” 그 말에 랍비는 또 이렇게 답했다. “당신 말도 맞소.”

모든 입장에 다 설득될 수 있다는 이 일화는 끝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은 최후에 ‘합의하지 않기로 합의(agree to disagree)’함으로써 갈등을 피한다는 ‘오만(Aumann)의 공식’에 반발하기 위해 종종 소개된다. 사람들이 과연 언제까지 의견불일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궁금해하던 일단의 학자들은 오만의 공식을 이론적 실증적으로 검토해 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는데 사람들은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동의하기로 동의(agree to agree)’ 개념이 그것이다. 이 개념에 따르면 서로를 존중하며 정직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토론자가 똑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토론한다면 반드시 합의에 도달한다는 내용이다.

소통이 문제라고들 한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보면 넘쳐나는 것이 말이요, 글이다. 채널은 늘어나고 매체는 더욱 빠르고 편리하게 진화해간다. 사람의 자유로운 의견이 올드미디어와 페이스북을 넘나들며 거세게 번져간다. 누구나 컴퓨터를 켜면 무료로 뉴스를 소비하고 몇 번의 클릭으로 자기의 내밀한 생각까지(욕설 포함) 댓글로 남길 수 있다. 생각과 자료가 넘치는 사람들은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멋지게 꾸며놓고 방문자를 맞을 수 있다. 아이폰 사용자는 이 모든 것을 손바닥 안에서 해결한다. 국경을 넘은 트위터가 하루 종일 재잘대는 멋진 신세계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설득과 토론의 문화가 부재라고 한다. 그러나 지상파와 케이블이 100분토론, 심야토론, 끝장토론 같은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신문의 오피니언난에도 찬반 논쟁이 실린다. 인터넷 토론방에서는 연일 뜨거운 공방전이 벌어진다. 광고 기법은 현란함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르고 있고 숙련된 홍보 기술자가 사회 각 분야에서 맹활약 중이다. 그런데도 토론과 설득이 부족하다고?

문제는 설득의 도구가 아니라 결국 설득의 주체인 사람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정보가 대략 엇비슷하고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고 가정할 때 ‘동의하기로 동의’ 개념에 따르면 결국 상호 존중과 솔직함이 주요 요인으로 추출됨을 알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우리 사회의 설득 저항을 키우는 요인은 상호 의심과 거짓말이 주범이라는 결론이다.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가 여야의 판도를 바꿔놓은 지방선거 이후 다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각종 지자체 현안에서 중앙정부와의 마찰이 예상되고 교육 행정도 이 어수선한 싸움판에서 예외가 아니다. 대개의 논쟁은 더 잘사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사람들이 정책을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이다. 이런 정책갈등은 상호 입장 존중과 약간의 타협이 보태지면 비교적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을 지녔다. 그런데도 마치 종교나 신념을 다투듯 입장이 견고하다. 설득을 하려는 사람만 넘쳐날 뿐, 설득당하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모두 자기는 꿈쩍하지 않으면서 소통부재 탓만 한다.

앞으로 하릴없는 줄다리기로 지루하게 지면을 장식할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이제 좀 솔직해지라고 주문하고 싶다. 다양한 논점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타당하다고 하더라도 그걸 제시하는 인간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이제 설득당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말을 잘하려면 우선 잘 들어야 하듯 설득하려면 설득당할 줄도 알아야 한다. 설득당하는 것이 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토론을 뜻하는 영어인 debate는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낸다’는 뜻의 라틴어 debatum에서 나왔다. 토론의 완성은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힘 있게 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상대방과 청중의 이해를 얻어내는 데 있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듣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소통은 결국 양측이 함께함으로써 가능해진다.

박성희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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