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권순활]‘깨어있는 기업인’ 쿠어스와 피셔

  • 입력 2009년 9월 30일 21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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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쿠어스 맥주 창업자인 조지프 쿠어스는 1971년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의 검사였던 루이스 파월의 강연록을 읽고 자극을 받는다. 파월은 자유시장경제와 기업을 공격하는 일방적 주장이 득세하는데도 미국 기업인들이 나 몰라라 하는 현실을 우려했다. 파월은 “기업인들은 그들을 비판하는 자들의 환심을 사려하거나 반(反)자본주의 활동에 자금을 제공하고 있다”며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조국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쿠어스는 자유주의자들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일에 나선다. 그가 기부한 25만 달러로 설립된 헤리티지 재단은 대표적 우파 싱크탱크로 성장하면서 미국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이 재단과 쌍벽을 이루는 케이토 연구소도 코크 인더스트리 회장인 찰스 코크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

영국 경제문제연구소(IEA)는 강성노조와 공공부문 방만의 ‘영국병’을 고친 ‘대처 혁명’의 숨은 공신이다. 1955년 IEA를 세운 앤서니 피셔는 양계사업으로 번 돈을 세상을 바꾸는 데 쓴 기업인 출신이다. 그는 ‘노예의 길’을 통해 자유주의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를 찾아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할까요?”라고 물었다. 하이에크는 “아닙니다. 사회의 진로는 오직 사상의 변화에 의해서만 이뤄집니다. 당신이 먼저 합리적 주장으로 지식인, 교사, 작가들을 설득하고 이런 사상이 그들의 영향으로 보편화될 때 정치인들은 따라올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피셔가 20여 년간 기울인 노력은 영국의 대세를 점차 변화시켰고 대처 정권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대처는 뒷날 “당신들의 위대한 노력에 동참한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들은 소수였지만 당신들은 옳았고 영국을 구했다”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과 기업인들도 사회공헌 활동에 많은 돈을 쓴다. 하지만 쿠어스와 피셔처럼 신념을 갖고 국가 발전에 기여할 시대정신을 확산시키는 데 지갑을 여는 ‘깨어있는 기업인’이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다. 반(反)기업·반시장 세력의 비위를 맞추는 데 급급하면서 질질 끌려 다닌 기업도 적지 않다. 한 경제학 교수는 얼마 전 사석에서 “좌파정권 시절 대기업들은 기업 공격에 열을 올린 권력 주변 단체와 인사들을 듬뿍듬뿍 지원했다. 기업과 시장을 중시하는 단체는 지금도 찬밥 취급을 받는 게 현실이다”며 개탄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서 중도실용과 친(親)서민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자유, 경쟁, 시장, 기업, 책임 등 우파적 키워드가 국가 발전의 뼈대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만 해도 과거의 폐쇄적 좌파적 경제관을 벗어던지지 않았다면 빈곤 탈출과 국제적 위상 강화가 불가능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공동체의 번영과 몰락은 구성원들이 세상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행동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우리 기업인들도 교육 출판 신문 방송 인터넷 등 국민의 정신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분야의 건전화 정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진정한 사회공헌이고 기업의 자구책이기도 하다.

정치학자 철학자 신학자인 마이클 노박은 기업인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자유사회라는 체제가 생존해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 기업세계에 몸담은 사람들은 자유사회를 지탱하는 원칙들을 잘 알고 지키는 다수 사람들을 교육하고 계몽하면서 유지할 책임을 강하게 느껴야 한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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