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A양, 사진, 그리고 거짓말

  • 입력 2009년 9월 30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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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아이돌 그룹 A 양의 알몸 사진이 ‘아 안돼 ○○’라는 제목으로 한동안 인터넷에 떠돌았다. 알고 보니 다른 여성의 나체에 A 양의 얼굴만 오려 붙인 합성 사진이었다. 경찰은 이 사진을 퍼다 미니 홈피에 옮겨 놓은 6명을 28일 불구속 입건했다. 문제의 사진을 만들어 인터넷에 띄운 사람은 아직 잡지 못했다.

‘사진은 거짓말 못 한다’지만 이미지 조작의 역사는 한참 거슬러 올라간다. 스탈린 히틀러 카스트로 등 독재자들은 포토샵 기술이 없던 시절에도 영웅처럼 보이도록 사진을 손질했다.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의 폼 나는 초상화를 구할 수 없었던 후예들이 노예제 지지자였던 남부 정치인의 전신 초상화를 얼굴만 링컨으로 바꿔치기했다니 이런 아이러니도 없을 것이다.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사진 수정이 쉬워지자 이미지 조작은 일상이 돼버렸다. 김아중 손예진 김희선 윤손하 송승헌 등 A 양처럼 나체 합성 사진으로 곤욕을 치른 국내 연예인이 한둘이 아니다. 세계적인 연예 잡지 ‘스타’는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의 염문설이 나돌 때 둘이 따로 찍은 사진을 같이 찍은 것처럼 대놓고 조작해 망신을 사기도 했다.

이미지를 먹고사는 상업 분야에서 ‘포토샵 성형’은 단골 가십거리다. 영국의 글래머 여배우 케이트 윈즐릿이 남성 잡지 ‘GQ’의 커버에는 비쩍 마른 몸으로 나왔다거나, 어제까지도 절벽 가슴이던 영화 ‘킹 아더’의 키라 나이틀리가 다음 날 샤넬 광고에서는 ‘C컵’이 됐더라는 식이다.

이미지 조작이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오면 적을 쓰러뜨리는 가공의 무기가 된다. 미 국무부는 최근 러시아의 미국 외교관 성추문 조작설을 제기했다. 지난달 러시아 인터넷에 공개된 러시아 주재 미국 외교관의 성매매 비디오가 서로 다른 화면을 짜깁기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사실이야 어떻든 이미지 조작이 외교전의 효과적인 방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진 조작 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그 진위를 가려내는 기술도 정교해지고 있다며 낙관론을 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진위를 가린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지는 백 마디 말보다 힘이 세다. 거짓임이 판명난 뒤에도 우리의 기억을 바꾸어놓고 의사 결정에까지 영향을 준다.

2004년 미국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와 접전을 벌였던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대표적인 이미지 조작의 희생자이다. 그는 이름난 반전 운동가인 영화배우 제인 폰다와 반전 집회에 참석한 사진 때문에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 사진이 공개되자 공화당은 케리 후보의 베트남 참전 경력을 내세우며 “케리는 베트콩을 위해 싸운 것이냐”고 공세를 퍼부었다. 후에 이 사진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진 때문에 부시를 찍었다는 유권자들은 “조작된 줄 알았지만 내 머릿속에서 그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이미지의 거짓말에 참다못한 프랑스 여당은 최근 정치인이나 모델의 사진을 수정할 경우 그 사실을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제안했다. 영국 야당도 사진을 수정한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기고 그 사실을 밝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포토샵 제한법이 거짓말을 자제토록 하는 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것이다. 보는 입장에서도 모르고 속기보다는 알고 속는 편이 나은지 모르겠다.

이진영 인터넷뉴스팀 차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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