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정상은]中반독점법, 또 하나의 벽

  • 입력 2007년 9월 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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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반(反)독점법이 지난달 30일 마침내 확정됐다. 초안 작성 뒤 13년 만의 일이다. 중국정부가 이미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물권법과 시장경제 질서에 부합하는 파산절차를 담은 파산법을 가결한 데 이은 것이다. 물권법과 파산법이 시장경제의 기초에 해당하는 법안이라면 반독점법은 공정하고 원활한 시장경제 체제의 운영을 위해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제한하는 법이다. 이런 면에서 반독점법 제정은 중국의 시장경제가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반독점법은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정권을 이용한 시장경쟁 제한 행위 규제, 외국기업의 중국기업 인수합병(M&A) 심사 강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물론 독점 규제와 공정거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정부가 반독점법을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따라 각 기업 주체들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중국정부가 외국기업의 중국시장 독점이나 중국기업에 대한 M&A를 규제하는 반면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장을 독점해 온 중국의 거대 국영기업에 대해서는 솜방망이를 들고 나온다면 반독점법은 외국기업에 대한 또 다른 진입장벽이 될 것이다.

중국정부도 이를 의식해서인지 법안에 중앙 및 지방정부가 행정권을 이용해 특정 기업이 독점적 이윤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소위 ‘행정독점’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넣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회 공공이익’에 부합하면 허가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사회 공공이익’에 부합하는 통신서비스, 항공, 에너지 등에 종사하는 중국 국영기업과 소프트웨어, 휴대전화 등 소비재에서 독점 혐의를 받고 있는 외국기업에 다른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공공이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판단의 주체가 중국정부라는 점이 문제다. 자의적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행태는 외국기업의 중국기업 M&A에 대한 규제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외국기업의 중국기업 M&A는 당국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중 첫 번째 항목이 M&A로 인해 국가 이익에 피해가 없는지에 대한 심사이다. 역시 중국정부의 재량권 행사가 가능한 항목이다.

중국의 반독점법은 우리 기업들에도 득보다는 실이 많아 보인다. 일단 반독점법이 중국의 지방정부가 해외 또는 중국 내 다른 지역의 상품 반입에 대한 차별 조치나 진입장벽 구축을 못 하도록 한 것은 우리 기업들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이기주의가 극에 달한 중국의 현 상황에서 법이 제대로 집행될지 불투명하다. 반면 반도체, 통신 등 한국기업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업종의 경우 가격 책정 등에 대해 중국 측의 자의적인 반독점법 적용으로 규제당할 여지가 크다. 또한 향후 중국 사업의 새로운 동력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이는 M&A는 대단히 까다롭고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정부가 반독점법을 제정하는 취지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국영기업의 행정 독점을 해소하고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에 적합한 시장경쟁시스템을 구축하여 경제의 질을 제고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러나 반독점법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공공이익 보호’라는 빌미로 비효율의 극을 달리는 국영기업 개혁을 미룬다면 조만간 이들 기업이 경제발전에 심각한 위협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중국정부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정상은 삼성경제연구소 중국연구실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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