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유관순상 조수옥 인애원원장 수상

  • 입력 2002년 2월 28일 17시 58분


“아이들이 좋아서 함께 한 것일 뿐 내세울 만한 것도 없어요. 훌륭한 분들이 많을 텐데….”

28일 동아일보사와 충청남도, 이화여고가 공동 제정한 유관순상의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된 경남 마산시 구암동 인애원(仁愛院) 조수옥(趙壽玉·88) 원장은 “어릴 적부터 흠모해온 유관순 열사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상이 나에게 돌아오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겸손해했다.

‘고아들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조 원장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깊은 신앙심 때문인지 자애로운 눈매에 고운 피부가 평생 가시밭길을 걸어온 사람으로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경남 하동군에서 태어난 조 원장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농촌에서 살다 20대 초반 우연히 경남 진주시의 성경학교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그의 인생행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그는 경남 사천시의 한 교회에서 전도활동을 하며 ‘하나님’을 알고부터는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일본의 우상을 섬기는 신사참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경찰의 눈을 피해 부산으로 간 조 원장은 10여명의 목회자와 함께 신사참배 반대를 주도하다 40년 9월20일 체포됐다. 이후 평양교도소에서 5년을 복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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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유관순賞 조수옥씨

경제가 말이 아니던 시절, 교도소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들락거리는 아이들로 넘쳐났다. 17세에 소매치기 전과가 7범인 소녀도 있었다. 그들의 처참한 생활에 때로는 통곡하고 때로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는 기도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저들과 함께 사는 길을 가겠습니다.”

그는 광복과 함께 자유의 몸이 되자 45년 말 마산시 장군동에 인애원을 세웠다. 홀몸으로 보육원을 운영하며 겪은 고통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마산 인근의 시골 장터를 전전하며 생선과 채소를 닥치는 대로 팔았다. 6·25전쟁 직후에는 구호물자를 얻어다 생계를 잇고 강원도에서 억센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트럭을 타고 다니며 콩을 팔기도 했다.

현재 인애원에는 72명의 원생이 있다. 지금까지 거쳐간 불우아동은 1700여명. 비교적 기반이 잡힌 91년 장군동에서 팔룡산 자락으로 인애원을 옮겼다.

조 원장은 ‘돈은 만악(萬惡)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통장이 없다. 자랑도 싫어한다. 거처 겸 사무실에는 상장이나 상패 하나도 두지 않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 아닙니까. 모두가 내 몸을 귀하게 생각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되새기며 바르게 세상을 살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선정경위…애국-민족정신구현 미래지향적 여성 평가▼

유관순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심대평·沈大平 충남지사)는 3차에 걸친 회의를 통해 수상자 선정 기준으로 애국애족정신을 지닌 인물인가, 자신의 몸을 던지면서 민주 민족 정신을 구현했는가, 미래지향적인 여성인가 등 세 가지를 정했다. 위원회는 이 기준에 따라 전국에서 응모한 12명의 후보 중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렀고 사재를 털어 사회복지법인을 운영하는 등 선정 기준에 가장 잘 부합하는 조수옥씨를 제1회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마산〓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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