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생은 한 편의 詩”… 소박하고 진솔한 시 예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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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시를 읽는가/프레드 사사키, 돈 셰어 엮음·신해경 옮김/316쪽·1만6000원·봄날의 책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외벽의 광화문글판에 김광규 시인의 ‘오래된 물음’의 시구가 적혀 있다. 동아일보 DB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외벽의 광화문글판에 김광규 시인의 ‘오래된 물음’의 시구가 적혀 있다. 동아일보 DB
‘어울리는 것: 퀭한 눈, 흐트러진 머리카락, 고독….’ ‘동떨어진 것: 번듯한 직장, 저축, 평온함….’

많이 좋아졌다지만 시는 여전히 편견에 시달린다. 시를 즐긴다면 별종 취급당할 것 같아 흠칫. 공공장소에서 시집을 꺼내려다 괜히 손이 부끄러워져 스마트폰을 뒤적인다. 시심(詩心)과 일상은 동행할 수 없으며, 일상에서 꽃핀 시는 가짜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일부 있다.

시는 정말 특별한 이들이 읽는 걸까. 미국 시 전문지 ‘시(Poetry)’는 각계각층의 50명에게 시에 대한 원고를 청탁했다. 베스트셀러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인 록산 게이를 비롯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가수, 작가, 기자, 첼리스트, 철공노동자, 교사, 군인 등이 시에 얽힌 기억을 풀어냈다. 이렇게 해서 시와 인생을 버무린 50개의 이야기가 담겼다.

시는 때로 어떤 학술서보다 더 정확하게 진실을 찌른다. 사랑에 빠진 뇌를 연구하기에 앞서 생물인류학자인 헬렌 피셔는 시집을 들췄다. 시에는 낭만적인 열정에 휩쓸린 뇌가 분출하는 감정의 낙진이 훌륭하게 묘사돼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저 대자리를/차마 치워버리지 못하네/당신을 집에 데려왔던 밤/저걸 펴는 당신을 지켜봤으니.”(9세기 중국 시인) “누워서도 잠들지 못하는 밤, 뜨거워라/점점 커지는 열정의 불꽃.”(19세기 일본 시인)

래퍼이자 교사인 체 스미스는 시는 곧 어머니 아버지의 인생이라고 고백한다. 혼자 아이를 길러야 했던 시카고 출신의 열다섯 살 소녀였던 스미스의 어머니는 ‘어리고, 너무나 가늘고, 너무나 꼿꼿하다/너무 꼿꼿해! 아무것도 그녀를 굽히지 못할 것처럼’(제시 미첼 ‘어머니’) 보였다. 마야 안젤루의 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누구도/어느 누구도/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 말이다’(‘홀로’)에는 거칠지만 역동적인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록산 게이의 글에는 시에 대한 상찬이 빼곡하다. 시를 잘 모르지만 읽고 나면 순수한 기쁨이 뒤범벅된 느낌에 감싸이고, 어떤 식으로든 시는 자신의 세계를 변화시킨다고 단언한다. “내 마음과 몸에 와 닿는 시인과 시는 끝도 없이 쓸 수 있다.”

철공노동자 조시 원은 시와 철공의 공통점을 놀라운 통찰로 짚어낸다. “철공 일이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교가 필요할 때가 많다 보니, 기다란 시를 머릿속에 담는 일에서 까다로운 용접을 마치거나 굽은 계단에 철제 난간을 세웠을 때와 약간은 유사한 만족감이 느껴진다.”

평론가가 쓴 비평서와 거리가 멀다. 시와 특별한 인연이 없는 이들이 시라는 주제어를 받아들고 쓴 에세이에 가깝다. 시를 매개로 해서인지 지나온 시간의 가장 시적인 토막을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미국에 이어 한국 독자들의 고백을 한국어판으로 엮을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 시에 얽힌 사연을 투고하면 심사를 거쳐 책으로 만든다. 봄날의 책 출판사로 문의하면 된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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