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이란?’ 고민하던 파키스탄, 결국 이란편에 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2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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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 우방 사우디냐, 경제적 실익의 이란이냐’를 놓고 고민하던 파키스탄이 결국 이란을 택했다.

파키스탄 의회는 10일 상하원 합동회의를 거쳐 “파키스탄이 예멘 분쟁에서 중립을 유지하기 바란다”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중립 유지’라는 표현만 보면 어느 쪽 편도 들지 않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하지만 예멘에 파병을 요청했던 사우디에겐 ‘No’, 파병을 만류한 이란에겐 ‘Yes’ 신호를 보낸 셈이다.

사우디 남쪽에 위치한 예맨은 내전 상태다. 시아파 반군세력인 후티가 수도 시나를 점령하면서 정국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러자 사우디를 필두로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요르단 같은 수니파 왕정국가들이 지난달 26일부터 후티를 향한 공습을 감행하며 군사개입에 나섰다.

서남아시아 최대 회교국가인 파키스탄은 공습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파키스탄은 인구 기준으로 인도네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회교국가다. 그중 수니파가 다수인데다 미국과 사우디의 오랜 우방이다. 6일 사우디가 파키스탄에 지상군 파병을 공식 요청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자 이란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란은 최대 시아파 국가로 역시 시아파인 후티를 배후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 이란의 자바드 자리프 외교장관이 8일 파키스탄을 전격 방문했고 다음날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를 직접 만나 예멘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자리프 장관은 최근 이란핵협상 잠정 타결안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같은 날 이란 남서부 아살루예 가스전으로부터 파키스탄 남부 나와브샤를 잇는 1680㎞의 ‘평화 가스관’ 건립사업이 중국 자본의 참여로 본격화한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가 터져 나왔다. 2년 뒤 이 가스관 공사가 완료되면 파키스탄의 고질적 적력 부족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 있다며.

파키스탄으로선 전통적 우방인 사우디 편을 들자니 가스관 사업을 접한 이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전체 국민의 20%인 시아파가 이란과 국경을 접한 서쪽 지대에 밀집해 있어 파병으로 인한 국론 분열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골치가 아픈 샤리프 총리는 파병 문제의 결정권을 의회에 떠넘겼고 의회는 “예멘 분쟁을 끝내는데 파키스탄이 적극적인 외교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이슬람협력기구(OIC)에서 예멘 휴전 논의가 이뤄지도록 정부가 나서라”라는 결의안을 발표했다. 군사 개입에 대해선 한발을 빼면서 외교적 중재로 생색을 내겠다는 포즈를 취한 것이다. 다만 오랜 우방인 사우디의 눈총을 의식해 “만약 사우디의 ‘영토 보전’이 침해받거나 위협받는다면 파키스탄은 사우디 국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협력할 것”이란 립 서비스를 더했을 뿐이다.

사우디는 불편한 심기를 즉각 노출하진 않았다. 대신 예멘 공습에 참여한 아랍에미리트(UAE)가 나섰다. 안와르 무함마드 가르가쉬 UAE 국무장관은 파키스탄의 파병거부 발표가 난 10일 “아라비안 걸프는 위험한 대치에 직면했다”며 “파키스탄은 걸프지역 6개 국가와 전략적 우호관계에 대한 의견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트위터 메시지를 올렸다. 그는 “이런 심각한 문제에 모순적이고 모호하게 대응한 것은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이는 ‘굼뜬 중립’ 밖에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국제유가 급락과 이란의 국제무대 복귀로 인해 중동의 맹주 사우디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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