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 고장내는 컴 수리업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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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팅 방해 프로그램 설치 등 더 망가뜨려 바가지 씌워
1만여명에게 21억원 받아 챙겨… 前現대표-기사 등 66명 구속-입건

고객이 맡긴 컴퓨터를 조작해 허위로 수리비용을 청구한 컴퓨터 수리업체 직원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고객들로부터 수리를 의뢰받은 뒤 데이터가 손상됐거나 하드디스크를 교체해야 된다고 속여 고객 1만300명으로부터 총 21억5800만 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컴퓨터 수리업체 A사의 전 대표이사 이모 씨(32) 등 4명을 구속하고 현 대표이사 정모 씨(35) 등 6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8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 등은 수리를 맡긴 고객의 컴퓨터에 ‘컴퓨터 부팅(booting) 방해 프로그램’을 설치해 컴퓨터 부팅이 안 되게 만든 뒤 데이터 복구비용이나 하드디스크 등 부품 교체비용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일부러 부품을 파손하거나 실제로 부품을 교체하지도 않은 채 부품교체 비용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전·현직 대표이사와 수리기사, 콜센터 직원까지 조직적으로 공모했다.

이들은 이런 방식으로 지난해 10월 조모 씨(29)를 속여 624만 원을 컴퓨터 수리비로 청구하는 등 지난해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업종과 대상을 불문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금액은 최소 5만 원부터 최대 660만 원까지이고 유명 대학병원을 포함해 병·의원 61곳, 학교 64곳, 법무·회계법인 20곳 등도 피해를 봤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될 수 있는 병원진료 내역 및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개인의 가족사진 등 개인정보까지 훼손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업체는 지난해 매출액이 50억 원에 이르는 업계 상위권 업체로 월 광고비용만 1억7000만 원을 쓰는 등 대대적인 광고로 고객을 유치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피의자 66명 중 컴퓨터 수리 자격증 소지자는 전무했고 대부분 동종업계 근무경력 1∼3년에 그쳐 전문성이 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런 수법이 “컴퓨터 수리업계의 오랜 관행”이라는 피의자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동종 업체들로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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