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노무현과 원세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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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선거 댓글 하루 0.84건과 노무현의 ‘피로 지킨 NLL’ 포기행각
過誤의 경중 냉철하게 따질 때
국정원은 대한민국 체제 수호하고 국민은 盧의 빗나간 교훈 새기며
민주당은 대북 노선 분명히 해야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14일 검찰 수사 발표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장 원세훈은 지난해 2월 국정원 부서장 회의에서 “종북 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는데, 금년에 확실히 대응 안 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원세훈은 4개월 뒤 같은 회의에서 “종북 좌파 척결은 물론이고 그 동조세력도 면밀 점검, 종북 좌파세력이 국회에 다수 진출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원세훈의 이 같은 지침에 따라 국정원 심리전단 사이버팀 요원이 작년 대선 기간에 댓글 73건, 찬반 표시 1281건의 불법 선거운동을 했다고 집계했다. 댓글은 민주당 반대 37건, 통합진보당 반대 32건, 안철수 반대 4건이었다. 찬반 표시는 새누리당에 우호적인 것이 729건, 민주당에 비판적인 것이 410건, 안철수에 비판적인 것이 93건, 통합진보당에 비판적인 것이 19건 등이었다. 검찰은 이를 “야당후보 낙선운동의 일환”이라고 규정했다. 검찰의 조사 대상 기간이 지난해 9∼12월의 87일간이었으니 댓글은 하루 0.84건, 찬반 표시는 하루 14.7건꼴이었다.

#24일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 소속 의원들에게 2007년 10월 평양에서 있었던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제출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 김정일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에게 “우리(북한)가 주장하는 (서해의) 군사경계선, 또 남측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NLL), 이것 사이에 있는 수역을 공동어로수역 아니면 평화수역으로 설정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북한은 1992년 남북 기본합의서 및 남북 불가침부속합의서 서명 당시 NLL을 수용했으나 그 후 NLL보다 훨씬 남쪽에 일방적으로 군사분계선을 긋고 말썽을 부려왔다. 김정일이 한 말의 뜻은 우리 군이 국민의 뜻을 받들어 피로 지켜온 바다 일부를 공동소유로 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령도 등 서해 5도는 남북 공유수면 위에 떠 있게 된다. 노무현은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NLL은 바꿔야 한다. 내가 핵심적으로 가장 큰 목표로 삼았던 문제를 위원장님께서 지금 승인해 주셨다”고 응답했다. 김정일이 “쌍방이 (NLL 관련) 법을 다 포기한다고 발표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하자 노무현은 “좋습니다. …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니 뒷걸음치지 않게 쐐기를 좀 박아놓자”고 앞질렀다.

#국정원 댓글 수사는 국정원의 선거 개입 혐의로 시작됐으나 정작 선거 개입에 대해 밝힌 것은 미미하고 국정원법상의 정치 개입 혐의가 덧씌워져 뒤죽박죽돼 있다. 원세훈의 잘잘못은 법정에서 가리면 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국정원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확대하는 것은 원세훈이 말한 ‘종북 좌파 및 그 동조세력’이 누구보다 기뻐할 일이다. 나는 원세훈이 직무에 충실했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원세훈은 국내 정치가 아니라 대북 심리전 활동을 보다 강화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북한을 위해 붕괴시킨 대북 인적 정보·공작망을 복원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대한민국 정통체제를 갉아먹으려는 국내 세력과 간첩들로부터 국가안보를 지켜내는 일도 국정원의 책무이다. 이번 사건을 대선 불복(不服)운동으로 발화(發火)시키려는 민주당의 움직임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인터넷은 흔히 드넓은 바다에 비유된다. 국정원 요원들이 쓴 그 정도의 잡글에 유권자들이 현혹되어 문재인 대신 박근혜를 찍었고, 선거 결과가 뒤바뀌었다고 주장한다면 국민을 너무나 우습게 아는 태도이다.

#노무현이 김정일 앞에서 한 “세상에 자주적인 나라는 북측 공화국(북한)밖에 없다”는 말은 그의 정신을 의심하게 한다. 김일성 3대는 시대착오적인 세습 전제체제의 생존을 중국과 미국에 구걸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5000만 국민과 북한 2400만 주민을 핵 인질로 삼은 것이 김정일이다. 그런 반인륜 독재자 앞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은 “핵 문제를 확실하게 이야기하라는 (한국 내의) 주문은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이라고 매도했다. 노무현은 또 “세계 정상들을 상대로 북측의 대변인 노릇, 변호인 노릇을 하고 얼굴도 붉혔다”며 알아달라는 듯이 말하고 “그러나 북측에서 볼 때는 많은 한계도 보였을 것”이라며 미안해했다. 그는 김정일에게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한미 작전계획을 없애버렸음도 자랑했다. 노무현은 퇴임 후인 2008년 10월 자신과 김정일의 정상회담 1주년 기념 특별강연이란 것에서 “(한반도) 유사시에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북한을 더욱 두렵게 한다”면서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 전시(戰時)작전권 환수와 한미연합사 해체를 추진했음을 시사했다. 대한민국은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국가안보와 영토보전을 맡기고 있었다. 민주당은 앞으로도 그런 대통령을 두둔하는 데 진력할 것인가.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노무현 전 대통령#민주당#대북 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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