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보는 총선]<6> 정재승 KAIST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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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부족의 ‘추장 선거’

알렉산더 토도로프와 그의 동료들이 2005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선거에 나온 후보에게 투표할 때 별로 심사숙고하지 않는 듯 보인다. 프린스턴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미국 하원의원 후보의 사진을 1초간 보여준 뒤 “누가 유능해 보이는가? 그래서 누구를 뽑을 것인가?” 질문해 보니 실제 선거결과와 70%나 일치했다. 다시 말해 많은 유권자들이 실험 참가자들처럼 1초의 첫인상으로 후보들을 판단한 뒤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던진 모양이다.

가령 정치인 한 명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연상되는 이미지나 단어들이 순식간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갈 것이다. 이 막연한 근거를 통해 사람들은 정치인을 판단하고 단정 짓는다. 비호감인지 아닌지,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우리 뇌는 순식간에 판단한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 교수는 이 단축회로를 ‘체감표지’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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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 대해 연상되는 이미지는 대개 미디어가 조작한 것일 가능성이 높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여기에 정치적 판단기준의 무게를 둔다. 약 3만 년 전 정글에서나 썼던 ‘우리편 네편 가르기’ 신경회로를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때도 사용한다는 건 현대인들의 비극이다. 게다가 그것을 인정할 능력조차 없을 만큼 어리석기까지 하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베레비는 저서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에서 타인에 대한 판단 체감표지를 ‘부족적 감각’이라 불렀다. ‘투쟁-도피 반응’과 밀접하게 연관된 이 회로는 인간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빠지면 맞서 싸우거나 도망가는 전략 중 하나를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시상하부의 명령에 따라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스트레스성 호르몬 코티졸이 마구 요동치면서, 신경세포들은 무리에 속한 자들만이 겪는 안락함과 안전을 포기하지 말라며 사람들을 편 가른다.

인간의 생존은 은행에 넣어둔 돈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내 편이 되어 줄 사회적 유대관계로 지켜진다. 집단의 일원으로 인식되는 것이 때론 억울하기도 하지만, 인간이란 외로운 족속들은 ‘집단이 주는 안락함’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5년 전 이맘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그들에게 이명박, 정동영 후보의 사진과 공약을 보여주며 뇌영상 촬영을 했다. 그들에게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이라며 상대 후보의 공약을 보여줘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열렬한 긍정의 반응을 보였다. 그들에겐 누구의 공약인지가 중요할 뿐, 내용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럴듯하게 공약과 정책을 얘기하고 이념과 시대정신을 논하지만, 실상 그 속엔 ‘그 사람, 맘에 안 들어!’라는 정서가 숨어있는 것이다.

또다시 정치적 선택의 계절이 왔다. 어리석은 무리 짓기 본성은 숨긴 채 우리는 거창하게 유세하고, 토론하고, 논박하며 지지후보를 위해 기꺼이 상대 후보 진영과 싸울 것이다. 그러나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우리가 싸워야 할 상대는 ‘우리들의 원시적인 뇌’이다.

정재승 KAIST 교수
#4·11총선#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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