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컬링 왜 하냐고? ………………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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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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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컬링/최상희 지음/288쪽·1만1000원·비룡소

“그냥요.”

10대 아이들에게 질문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이런 답을 들으면 “넌 생각이란 걸 하고 사느냐”고 뒤통수를 때리고 싶은 어른이 많다. ‘그냥, 컬링’은 ‘그냥’ 너머에 숨은 아이들의 에너지를 바라본다.

고등학교 1학년 차을하는 엄친아보다는 왕따에 가까운 남학생. 머리숱을 고민하는 중소기업 차장인 아빠와 엄마 이나래 여사, 피겨 유망주 여동생 연화와 함께 서울 변두리에 산다.

을하에게 학교는 시간 때우는 곳이다. 주말이면 인터넷 게임을 하다 새벽녘 잠들어 토요일인지 일요일인지 헷갈리는 시간에 일어난다. 그의 꿈은 PC방 사장님이다. ‘딱 거기까지’만 하면 행복할 것 같아서다.

을하는 팀 정원(4명)을 채우려는 같은 반 친구 며루치와 산적에게 이끌려 어쩌다가 컬링에 입문한다. 컬링은 얼음판에서 납작한 돌을 미끄러뜨려 목표물에 다가가는 정확도에 따라 점수를 내는 경기. 한국에서는 겨울스포츠 소외 종목 중 하나다.

을하와 친구들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을 그냥, 한다. 엉덩이에 파스를 붙여가며 맹렬히 스톤을 던지고, 스톤이 나아가도록 죽어라 ‘비질’을 한다.

‘찌질한’ 10대가 우연히 비주류 스포츠에 입문해 성장한다는 이야기는 영화 ‘마린보이’가 보여줬듯 익숙한 성장 내러티브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비주류인 주인공들이 재단 이사장 댁 아들을 시원하게 혼내주는 에피소드도 많이 보아온 것이다.

이 소설의 매력은 이렇게 당연한 결말로 향하는 이야기 속에서 “푸핫” 하고 웃게 만드는 애드리브에 있다. 을하는 아빠가 주는 용돈에 ‘인형 눈 붙여 번 돈’이라고 이름 붙이고, 엄마의 휴대전화 97통과 문자 56통을 씹고는 ‘내일의 태양은 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고 말한다. 인터넷 게시물이었다면 ‘님 완전 웃겨요. 대∼박!’이라는 댓글을 달았을 법한 재미가 깨알 같다.

저자인 최상희 씨는 잡지사 기자를 그만두고 중학생들에게 논술 지도를 하면서 청소년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열심히 노력해도 비주류가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현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려 청춘 없이 사는 것 같은 요즘 10대에게 그들만의 에너지를 찾아주고 싶었다.

“인터넷 게임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써서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게 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 저자 역시 기자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겠다고 하자 “…”이라는 냉소와 마주했지만 ‘그냥’ 썼다고 한다. “이유가 없다고 쓸데없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냥 좋고 그냥 가슴이 뛰기 때문, 그게 진짜 이유 아닐까요.”

이 책이 왜 재밌느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답하겠다. 비룡소가 주최하는 청소년문학상 블루픽션 제5회 수상작. “구구한 감상을 잘라내는 과감성, 장을 전환하는 절묘한 타이밍, 절제된 결말이 감동과 여운을 준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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