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백만기의 컨버세이션]광고인이 살사광이 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4일 14시 32분


코멘트

●일상에서 써먹는 크리에이티브 기술 ③흡입법

몇 년 전에 와이프와 함께 박진영 콘서트를 갔을 때다. 박진영이 자신의 히트곡 중 발라드곡 하나를 부르는데 와이프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게 아닌가.

필자는 의심이 가득한 눈초리로 와이프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거, 이거 옛날 애인 생각하면서 우는 거 아냐?'

대중가요를 들으며 운다는 것은 노랫말을 들으며 옛 추억을 생각하고 그때의 감정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리라 믿었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나는 가수다\' 등장부터 아우라를 풍기던 가수 인순이.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나는 가수다\' 등장부터 아우라를 풍기던 가수 인순이.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란 걸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나는 가수다'를 통해 알았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눈빛과 미세한 감정의 흐름, 마이크를 쥔 손의 떨림, 목소리의 울림에서 나오는 감정, 그런 것들이 하나가 되어 5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충분히 한편의 드라마 같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노래를 듣기도 전에 눈물이 맺히는 일도 생겼다. '나가수'에 인순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였다. 그녀가 무대로 걸어나오며 풍기는 아우라에서 노래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당신은 오늘 절대 일등입니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표정 몸짓 걸음걸이 하나하나는 그녀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자세로 노래를 부르고 관객을 대하는지를 담고 있었다.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라고 본다. 고수의 아우라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단 한 번을 만나도 몇 마디만 나눠 봐도 자신의 모든 스토리를 상대에게 전할 수 있는 그런 내공을 쌓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론 나이 어린 친구들에게서도 배운다. KBS2 '탑밴드'에는 대한민국에서 기타 좀 치고 드럼 좀 친다는 친구들은 죄다 모여 경쟁한다. 말이 아마추어지 이미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스타 밴드로 통하고 있는 이들도 즐비하다.

특히 고등학생 밴드를 비롯한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친구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저 나이에 벌써 저 정도의 경험을 했다면 나중엔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예선과 본선을 거치면서 하나 둘 떨어져 나갔지만 그들이 보여준 멤버간의 믿음과 음악에 대한 간절함을 보면 그들은 모두가 이미 대한민국의 탑밴드였다.

KBS2 '남자의 자격-청춘 합창단' 팀은 나이를 떠나 이들보다 더 젊다. 서로를 보며 화음을 맞추는 초롱초롱한 눈빛의 할아버지들과 여고시절로 되돌아간 듯 서로 반가워하며 재잘거리는 할머니들. 인생의 저녁에서 맞이한 새로운 도전이 그들의 나이를 잊게 만든 것이리라. 그들의 이마에 새겨진 삶의 깊이만큼 그들의 합창은 진정으로 아름다웠다. 배움이라는 것은 참으로 끝이 없나보다.

KBS2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의 멘토 지휘자 윤학원
KBS2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의 멘토 지휘자 윤학원

▶마구 보고 마구 듣고 마구 경험하고 마구 흡입하라

요즘은 영화를 볼 때도 많은 생각이 들어온다. 한국에서는 '컨트롤러' 라는 이름으로 개봉되었는데 'The adjustment bureau' 즉 '조정국'이라는 원제를 가진 영화를 봤다. SF의 고전 '블레이드 러너'부터 '토탈리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페이첵' '넥스트' 등 수도 없이 영화화된 책을 쓴 작가 필릭 K 딕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그야말로 조정국이 나오는데 사람들의 인생을 그들이 좌지우지 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주인공은 그 운명을 거부하며 멋지게 자유의지를 실현시키는 것을 보여준다.

그동안 이런 류의 영화들을 많이 보았지만 책을 볼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어떤 나이에 어떤 감성으로 보느냐에 따라 깨닫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든 생각은 그것이 천지창조론이든 진화론이든 행성론이든 환생론이든 각자의 우주관이란 것은 맞고 틀리고가 없을 거라는 것이다.

개인의 믿음에 맞게 실제로 그 우주관들이 사실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며 스스로 그렇게 믿으면 그것이 곧 사실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상황, 상황 장면마다 광고 아이데이션을 하고 있는 필자가 보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필자는 다시 태어나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 뮤지컬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이번 생에서 그 기회가 찾아왔다. 아마추어 뮤지컬 동호회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두 번 무대에 섰다. '맘마미아'에서는 소피의 아버지 중 한명인 여행가이자 작가 빌의 역을 맡았고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악역 스파이더 역을 맡았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커튼콜에서 동료들과 손을 잡고 인사하던 기억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또 한번은 와이프와 함께 살사댄스를 배웠다. 나중에 들었지만 처음 들어갔을 때 필자를 본 선생님이 라틴 필 가득한 외모만 보고 왠 선생님인가 했더란다. 지금은 좀 쉬고 있지만 그 현란한 스텝과 손맛은 정말이지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줬다.

아니 그렇게 바쁘다면서 언제 그런 것들을 다 하고 사냐고 묻는다. 살던 대로 살다보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아무 것도 안하고 사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본다. 결국 인생의 행복은 목적지 보다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모든 경험을 '흡입'하고자 아마추어 뮤지컬 동호회에서도 활동한다.
필자는 모든 경험을 '흡입'하고자 아마추어 뮤지컬 동호회에서도 활동한다.

▶광고의 기본기술이 흡입법이다

제 아무리 천재라 해도 태어나면서 가진 재능만으로는 '굿(Good)'은 될지언정 '그레이트(Great)'는 될 수 없다.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 중 하나는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자세다. 끝없는 인풋(Input)이 없이는 아웃풋(Output)도 당연히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마음을 열어야 한다. 선배의 조언은 물론 동료들의 의견, 심지어는 새까만 후배들의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야 화수분처럼 샘솟는 아이디어 주머니를 지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소리, 광고를 잘 모른다고 믿는 광고주의 이야기에도 귀를 잘 기울여야 한다. 많이 듣고 많이 보고 그 중 옥석을 가려서 아이디어를 한가닥으로 쭈욱 뽑아내는 것이 진정한 디렉터의 기술인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아이디어를 흡입하지만 같은 광고 일을 하는 다른 나라의 친구들에게서도 많은 자극을 받는다. 얼마 전 인도광고 특별전을 다녀왔다. 거기서 본 광고 한편을 소개한다.

배경은 인도의 한 장례식장.
한 사람씩 나와서 고인의 생전모습에 대해 유쾌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미망인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마이크를 잡는다.

'고인에 대해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고인에 대해 조금 불편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저는 고인 때문에 잠자리에서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매일 밤잠이 들려고 하면 그는 방귀를 뀌었습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본인도 그 소리에 놀라 일어났었지요.
무슨 소리 못 들었냐고 물었을 때 저는 아무 것도 아니니 그냥 자라고 했어요.
잠을 잘 수 없는 그 고통은 정말 말로 설명할 수가 없었죠.
그런데 지금 저는 그 소리가 그립습니다.'

순간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은 하나둘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미망인이 한마디를 하고 스피치를 마친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사랑하는 건가 봅니다.'

드라마도 아니고 광고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물론 1분이 넘는 시간도 그 역할을 했지만 참으로 감동적인 영상물이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지만 사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은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는다.

필자는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것을 다 흡입하는 말랑말랑한 스폰지같은 사람이고 싶다. 광고 일을 하든 어떤 일을 하든 이 기술을 통하면 훨씬 더 깊이 있고 훨씬 더 진한 삶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청춘합창단의 멘토 지휘자 윤학원 선생님은 지금까지 50년간 한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높이 올라갈수록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신다. 필자는 윤학원 선생님이 한없이 부러우면서 궁금하다. 50년 동안 같은 일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면 그 내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내일이 초조해지기는커녕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백만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marc@oysterp.com/블로그 blog.naver.com/bma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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