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는 소시민의 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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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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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위새 날다/구경미 지음/216쪽·1만 원·자음과모음

어머니가 위암으로 세상을 뜬 지 8년 후. 한가한 일요일 오후 아버지가 대뜸 말한다. “내가 보기엔, 그 여자가 원인이었다.” 영문을 모르는 은수, 경수 남매는 아버지의 뜬금없는 선언이 궁금하다. 시장에 위치한 ‘국제상사’란 의류상가 앞에서 양말 행상을 하던 어머니는 국제상사 주인인 여자에게 자릿값을 내면서도 10년 동안 온갖 멸시와 박해를 받았고, 그 여파로 위암이 생겼다는 것이다. 남매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아버지의 ‘국제상사 여자’ 복수 계획에 마지못해 참여한다.

복수에 나서는 가족 얘기를 그렸지만 작품은 한 편의 시트콤처럼 우스꽝스럽고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위암의 발병과 ‘국제상사 여자’를 결부시켜 장엄한 복수 분위기를 연출하는 설정 자체도 웃기지만 아버지의 캐릭터가 웬만한 코미디언 뺨친다. 이를테면 이렇다. 아버지는 어느 날 공업용 스테이플러를 집에 들여온다. 이유는 “이제 바느질을 안 해도 된다”는 것. 찢어진 옷이나 가방, 심지어 뒤축이 나간 신발에 아버지는 철심을 박는다. 남매는 “대단해요. 아빠”하며 환호하지만 철심이 박힌 옷과 가방 때문에 친구들에게 “거지같다”며 놀림을 받는다. 게다가 철심이 피부에 상처까지 내는 상황. 결국 스테이플러를 되팔고 그 돈으로 가족은 고기를 사다 구워먹는다. 못내 아쉬워하는 아버지.

구경미 씨. 자음과모음 제공
구경미 씨. 자음과모음 제공
‘국제상사 여자’의 내막이 드러나며 작품은 전환을 맞는다. 아버지의 지령에 따라 국제상사에 위장 취업해 ‘국제상사 여자’의 동태를 살피고, 딸은 “동생을 보러 왔다”며 그 여자에게 접근한다. 이들이 캐낸 ‘국제상사 여자’는 그렇게 악독하지도 않을뿐더러 내면의 상처까지 안고 있다. 아들이 뉴질랜드 여행을 떠났다가 실종 상태였던 것.

작품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얘기를 키위새를 통해 전한다. 뉴질랜드 국조인 키위새는 날지 못하는 새다. 연애와 진로 고민을 하던 ‘국제상사 여자’의 아들은 편지에서 “키위새처럼 날지 못할 것 같다”며 절망하고, ‘국제상사 여자’는 “키위새가 나 같아. 하지만 이 새는 국가의 보호를 받지만 나는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해”라며 아파한다. 복수 일념에 불타 체력을 키우기 위해 정력제를 먹는 어설픈 아버지,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지만 현실은 주부를 대상으로 한 의상학원에서 일하는 딸, 이삿짐센터 등에서 일하는 아들 등 작품에 등장하는 서민들의 모습은 모두 날지 못하는 키위새와 같다.

코믹하면서도 숨 가쁘게 달려간 전반부에 비해 ‘국제상사 여자’의 죽음이 불분명하게 처리되는 등 마무리는 아쉽다. 은수가 학원의 주임선생이 되고 경수가 연애를 시작하는 등 ‘훈훈한’ 후반 설정도 얼마간 작위적인 느낌이다.

“죽음과 복수라는 얘기를 너무 무겁지 않게 쓰고 싶었다. 가족의 의미를 뒤돌아보고, 키위새와 같은 소시민의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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