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동정-연민 없이 그린 장애인들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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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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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식탁
박금산 지음 332쪽·1만1000원·민음사

인터넷 독신자클럽의 오프라인 정모 자리. 시각장애인 레지나는 아름다운 얼굴과 풍만한 가슴으로 남자 회원들의 눈길을 모은다. 남자들은 부축한다며 슬쩍 팔꿈치를 그녀의 가슴에 댄다. 얼마 뒤 레지나는 모텔에서 회원들에게 성폭행당한다.

도와 달라는 레지나의 호출을 받고 달려간 민우에게 레지나는 말한다. “오늘 날 데려다 주시면, 있잖아요. 언젠가 꼭 자 드릴게요.” 민우는 레지나를 도와주지만 관계는 맺지 않는다. 그가 윤리적이어서? 아니다. 그녀가 곤경에 빠질 때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게 귀찮았고, 더 솔직하게는 책임지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는 앞 못 보는 그녀 앞에서 수음한다.

작품은 솔직하다. 장애인에 대한 연민도 동정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에게 평등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장애인은 비장애인의 도움 없이 살아가기 힘들고, 장애인 간에도 극심한 우열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냉철히 바라본다.

인물들은 통상적인 윤리관에서 비켜나 있다. 야간상고 교사인 민우는 10년 넘게 남성 언어장애인 세키와 동거를 하고 있지만 레지나를 연모하며, 레지나의 여동생인 자신의 제자 아녜스를 임신시킨다. 하지만 민우조차 정신분열증 아버지 때문에 우울한 유년기를 보낸 탓에 정신병을 앓는다. 사회적 소수자인 인물들은 서로 사랑하고, 질투하고, 엇갈리고, 분노하며 씨줄과 날줄처럼 엉켜 팽팽한 긴장감을 만든다. 자극적이되 가볍지 않고, 비일상성 속에 날것의 현실을 투영한다.

“장애인 문제를 다루되 구질구질하게 쓰고 싶지 않았다.” 2001년 등단해 9년 만에 첫 장편을 낸 저자의 말이다. 장애인들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그들을 삶의 주체로 그려보고 싶었다는 것. 말 못하는 남자(세키)가 앞을 못 보는 여자(레지나)에게 사랑을 고백하려다 누군지 모르기에 공포감을 느낀 여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리는 장면처럼 그들의 현실은 가혹하고 슬프다.

작품에 ‘아일랜드 식탁’은 나오지 않는다. 최근 신혼부부들에게 이런 이름의 식탁이 인기여서 ‘새 희망’의 의미로 제목에 썼다고 저자는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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