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이후 미국은]<중>경제정책 방향 바뀌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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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 “예산지출 거부권 행사”… 오바마노믹스 물거품 위기

“정책은 좋았는데 홍보가 잘 안 됐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3일(현지 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간선거 참패 원인을 이같이 요약했다. 경기부양책과 건강보험개혁법 금융개혁법 등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뒤 2년간 필사적으로 매달린 3대 개혁정책이 미국 경제는 물론 미 국민에게도 모두 좋은 것이었지만 정책의 온기(溫氣)가 국민의 피부에 와 닿지 않으면서 패배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장악했지만 이처럼 자신의 개혁정책에 확신을 갖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이 기존 정책의 궤도를 선회할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 공화당 ‘감세와 재정지출 축소’

당장 전운이 감돈다. 공화당은 중간선거 승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심판이었다며 ‘작은 정부’를 내세우고 있다.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3일 기자회견에서 “건강보험개혁법을 폐지하고 재정적자 감축을 위해 정부 지출을 2008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고 선언했다.

공화당이 중간선거 때 발표한 선거공약집인 ‘미국에 대한 맹세(Pledge to America)’는 감세와 재정지출 축소를 이념으로 하는 공화당 정책을 담고 있다. 공화당은 여기서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높은 세금을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기 위해 정부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경기부양자금 중에서 아직 집행하지 않은 돈은 지출을 허용하지 말고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부양자금과 구제금융자금을 더는 집행하지 않으면 1년 내에 1000억 달러의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공화당의 셈법이다. 또 정부가 임의로 쓸 수 있는 재량적 지출에 대해서는 한도를 설정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방정부 공무원을 줄여 국민세금을 아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최우선 개혁과제로 내세워 통과된 건강보험개혁법에 대해서도 공화당은 원위치하자고 주장한다. 건강보험개혁법 시행으로 기업의 보험료 부담이 가중되는 데다 감세조치 연장이 불투명한 관계로 기업이 고용을 늘리지 않아 오히려 악법이 됐다는 것이다.

○ 오바마 행정부와 충돌 가능성

공화당의 경제정책 방향은 기본적으로 ‘큰 정부’를 지향하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과는 뚜렷이 상반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위기 후 부실의 늪에 빠진 월가와 자동차회사에 국민세금으로 막대한 구제금융을 줘 회생시켰다.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고 지난해부터 8620억 달러를 투입해 경기 불씨를 살리려고 하고 있다. 나라 살림살이에 문제가 있더라도 당장 경기를 살리기 위해선 돈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공화당 지도부는 오바마 정부의 무분별한 재정지출에 대해 의회에서 예산지출 승인을 거부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만약 의회에서 정부예산 집행을 막을 경우 추가 경기부양책을 시행하기가 원천적으로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을 맡아야 한다. 개원 후 의회와 행정부가 경기부양 방식을 놓고 충돌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공화당이 협조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추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 오바마 경제정책 타협할까

현실은 오바마 대통령이 싫든 좋든 공화당과 타협하지 않고는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낮은 자세를 보였다. 3일 기자회견에서는 공화당이 강조하는 감세문제와 기후변화법안 등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도 공화당과 타협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그동안 추진해온 배출총량거래제 도입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의 주요 국내정책 중 하나로 지난해 가까스로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제동이 걸린 법안이다. 다만 그동안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부자감세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양보할지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을 포기하고 훌륭한 단임에 만족하겠다고 작정할 경우 공화당과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자신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 오바마 “어젯밤은 초라… 공화당과 협력” ▼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지겠다.”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하루 뒤인 3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완패했고 선거 패배의 책임은 나에게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중간선거 패배가 대통령의 독선적인 리더십과 무관하지 않으며 선거에서의 표심을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대해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문제였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됐다”며 “국민은 우리 행정부가 경제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한 데 대해 깊은 좌절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껏 몸을 낮췄다. 예전의 자신만만하던 표정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대통령 특유의 유머도 없었다. 선거 직전까지도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세한 탓에 목소리는 쉬었고 힘이 없어 보였다. 그는 “선거일 밤은 신명이 나는 경우도 있고 초라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어제는 초라한 날이었다”고 털어놨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앞으로 (선거운동 기간 비난을 퍼부었던) 공화당과 협력하겠다”고 선언한 뒤 “지금까지 민주당과 공화당을 갈라놓게 만들었던 이슈에 관해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4일 각료회의를 마친 뒤 하원의장에 취임할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를 18일 백악관으로 초대해 초당파적 논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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