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김현식의 삶을 살아온 新김광석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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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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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미스터메모리 두 번째 앨범 '내가 여기 있어요'


음악을 즐기며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다. 스마트 폰의 열기 속에 이제는 트위터를 통해 서로의 안부와 소식들을 손바닥에서 체크하고, 음악도 그런 기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8시간짜리 춘향전 판소리 완창을 소비하는 시대는 끝이 난 것일까? 무수한 뉴미디어들의 지저귐 속에서 정직한 서사를 전하는 포크 음악의 매력도 구시대의 유물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는 모양새다.

물론 그렇게 비관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는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일, 특히 그들의 희로애락에 관심이 많다. 결국 음악도 기계음의 무한반복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와 목소리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하이미스터메모리가 지난달 발표한 두 번째 앨범 '내가 여기 있어요'는 한국 포크계의 저력을 알리는 꽤 귀중한 작품이다.

서울내기인 '하이미스터(본명 박기혁·35)'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의 대학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조금은 구시대적인 음악인이다.

원래 문예창작학과 출신으로 소설가와 사진작가를 지망했던 그는 한동안 극단 산울림에서 배우생활을 하기도 했고, 한동안 좌판에서 여자들의 머리핀과 목걸이를 팔았고, 저녁이면 거리로 나가 빌려온 기타로 심장병 어린이를 돕는 포크가수협회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일찍부터 예술이 삶의 치열한 현장이며 음악만이 자신이 제대로 갖고 놀 수 있는 무기임을 알아챈 듯 보인다.

음악활동에 문예창작과 이력이 쏠쏠한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신경림, 은희경, 신경숙, 안도현, 정호승 등 당대 문인들과 함께 북 콘서트를 주관하고 여러 연극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하며 인맥을 넓혀왔다. 결국 그는 노래가 가진 소통의 힘을 알아채고 이를 여러 무대에서 능숙하게 활용하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데뷔했던 당시와는 사뭇 달라진 박기혁의 인생에는 분명 새바람이 불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번에 나온 신보에 담긴 총 10트랙의 풍성한 노래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그의 나직하지만 호소력 있는 음색은 그가 한층 더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 재림한 김현식과 김광석을 보는 듯한 느낌…

이 앨범에는 기여자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앨범 크레딧만 찬찬히 읽어봐도 그가 얼마나 한국 인디음악씬에서 소중한 존재인지를 가름 할 수 있다.

드라마 `파스타`의 OST로 대중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옥상달빛`이 `다시 비가 내리네`, `엄마를 부탁해`, `커피를 마시는 동안`, `¤순이 이야기`등 모두 4곡에서 코러스와 멜로디언 스트링편곡 등에 참여했다. `숙취(2010)`라는 노래에는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에 출연한 인디씬에서 가장 뜨거운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기타와 코러스로 참여했다. `엄마를 부탁해`에서는 그의 공연을 보고 음악을 시작했다는 밴드 `시와`의 코러스도 포함됐다.

돈 멕클린이 반 고흐의 그림과 그의 인생을 `Vincent`로 노래했듯 박기혁은 은희경 작가의 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를 읽고 영감을 받아서 `Fat boy`란 노래를 만들었다. 소설가 신경숙의 동명소설에서 제목을 따온 `엄마를 부탁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꽃순이 이야기`까지 다양한 세상을 아우르고 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지만 박기혁의 시선은 밥말리의 노래나 찰리채플린의 영화처럼 해학적이고 따뜻하다.

잊히고 사라지는 것들은 사람들만이 아니다. `다시 비가 내리네`와 `Fades away`에서처럼 어떤 순간이나 기억이 담긴 사물이 되기도 한다. 그것들은 작은 목소리로 "내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한다. 이 노래들은 그 질문에 대답하듯 사라져 가는 것들을 소중하게 받아 안고 있다.

■ 한층 성숙해진 2집 앨범, 한국 포크계의 미래

이번 2집은 내밀한 가사의 표현이나 곡의 완성도 프로듀싱 능력 등 사운드 측면에서의 그의 진화를 볼 수 있다. 과감한 트럼펫의 사용이나 세련된 신스 프로그래밍 같은 전반적인 트랙의 완성도와 능숙한 완급조절에서 프로듀서로서의 역량도 엿볼 수 있다.

대중에게 다가서기 위해 세련미를 입혔다지만 그의 노래는 변함없이 같은 밀도의 슬픔과 희망을 진솔하게 노래한다. 그렇게 이 앨범은 닮은꼴 음악의 홍수 속에서도 한국 포크계의 명맥을 이어간다.

제2의 '비처럼 음악처럼'으로 평가받는 '다시 비가 내리네'는 고 김현식 선배의 작품 이후에 비가 오는 날 가장 많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노래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새 앨범에 대한 리뷰를 꼬리로 달고 글을 접는다.

"서늘해진 기혁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유재하가 자꾸 떠올랐다. 말하지 않은 것까지 담아내는 생략과 응축, 그리고 단정한 토로 때문에 이 노래와 함께 있는 순간은 까무룩 까무룩 아프다"-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

"인위적인 세련미를 배제하고 자연스런 인간미를 배려하는 앨범. 담백함의 농도와 솔직함의 채도가 거기 공존한다."-박은석 음악평론가

"노래 'Fat boy'는 서정적이고 고독하네요. '남들은 왜냐고 묻지만 나만은 알고 있어요. 내가 외롭다는 걸.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아요. 저 문이 왜 닫혀 있는지를'."-은희경 소설가

■ 앨범 정보

앨범명 : '내가 여기 있어요'
발매일 : 2010년 9월 28일
가수 : 하이미스터 / 소니 뮤직
수록곡 : '다시 비가 내리네' 'Fat Boy' '꽃순이 이야기' '엄마를 부탁해' `Fades away
한줄평 : 고 김현식의 재림…한국 포크계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김마스타 / 가수 겸 음악칼럼니스트 sereeblues@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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