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우리의 영웅’ 슈퍼맨과 배트맨은 왜 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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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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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히어로 미국을 말하다/마크 웨이드 외 지음·하윤숙 옮김/408쪽·1만5000원·잠

슈퍼히어로 만화는 대중문화 장르에서 철학적 고민과 사회적 함의를 담은 장르로 진화해왔다. 이 책에는 철학자, 윤리학자, 교수, 영화 시나리오 작가, 만화 작가 20명이 본 슈퍼히어로 만화의 철학적 면모를 담았다. 모두 어린 시절부터 슈퍼히어로 만화를 탐독했고 관련 업계에 종사하거나 책을 쓴 적이 있는 ‘마니아’들이다.

슈퍼히어로의 복면은 정체성 혼란을 상징한다. 슈퍼히어로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평범한 시민, 두 가지 정체성을 갖기 때문이다. 슈퍼맨과 배트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의 자아정체성 형성 과정은 반대다.

슈퍼맨은 초능력자가 된 뒤 클라크 켄트라는 이중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으로 태어난 뒤 부모를 잃는 고통과 노력 끝에 배트맨이 됐다. 두 슈퍼히어로가 두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며 이를 통합해나가는 과정은 역할갈등을 겪는 평범한 사람들과 닮았다. 슈퍼히어로의 삶이 현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슈퍼히어로는 착하고 최선을 다해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돕는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가? ‘스파이더맨’은 이 질문에 답하는 만화다.

주인공 피터는 돈을 떼먹은 레슬링 프로모터에게 복수하기 위해 프로모터의 돈을 훔친 강도를 붙잡지 못한다. 이 강도는 도주하다가 피터의 외삼촌을 쏴 죽인다. 이 대목에서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직간접적으로 그 결과가 돌아온다’는 답이 제시된다. 피터는 이후 불의를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도덕적 감수성을 갖게 된다. ‘의무를 다해야만 마음의 평화를 가질 수 있다’는 두 번째 이유가 등장한 것이다. 동시에 권선징악적 줄거리에서 ‘도덕적 의무에는 보상이 따른다’는 답도 얻을 수 있다.

슈퍼히어로는 고독하다. 심지어 로빈, 캣우먼, 형사와 경찰들, 충성스러운 집사 알프레도를 동료로 거느린 배트맨마저도 외로움에 시달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3단계로 구분했다. 최고의 단계는 서로 헌신적이고 동등한 관계다. 배트맨이 이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범죄에 맞서 싸우는 데 지나치게 많은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배트맨의 친구들은 모두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되는 인물뿐이다. 고독으로 고통 받는 배트맨의 모습은 균형이 맞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책은 슈퍼맨과 배트맨, 엑스맨, 헐크, 판타스틱포 등을 다룬다. 개인의 사회적 책임, 정의, 범죄와 처벌, 자아 정체성, 과학과 자연을 보는 시각 등 다양한 철학적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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