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신성한 최고봉, 탐욕과 야만에 짓밟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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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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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베레스트의 진실/마이클 코더스 지음·김훈 옮김/494쪽·1만6000원·민음

티베트어로 ‘대지의 여신’을 뜻하는 초모랑마(에베레스트). 여신의 땅은 그렇게 세계 최고봉 등정이란 명예를 탐내는 등반객들과 그들의 돈을 탐내는 사기꾼의 무정부적 공간으로 변해 가고 있다. 사진 제공 민음인
티베트어로 ‘대지의 여신’을 뜻하는 초모랑마(에베레스트). 여신의 땅은 그렇게 세계 최고봉 등정이란 명예를 탐내는 등반객들과 그들의 돈을 탐내는 사기꾼의 무정부적 공간으로 변해 가고 있다. 사진 제공 민음인
고대의 신전은 가장 신성한 곳인 동시에 지상의 율법에서 해방된 범죄의 온상인 경우가 많았다. 신성한 것은 쉽게 타락한다. 세계 최고봉 초모랑마(에베레스트) 역시 오늘날 그러한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미국 시카고트리뷴지의 계열 신문사인 ‘하트퍼드 쿠랑’의 기자인 저자는 2004년 초모랑마 등정 과정을 기사화하기 위해 미국 등반대의 일원으로 이 산을 찾는다. 세계 최고봉을 밟는다는 꿈에 젖었던 그는 산악인에게 가장 신성한 땅이었던 이곳이 탐욕과 야만의 땅이 돼버린 것을 발견한다.

오늘날의 초모랑마는 8000m 이상 히말라야 고봉 중에서 가장 등정이 쉬운 산이다. 세계 최고봉에 오르게 해주겠다는 상업주의가 득세하면서 환경 파괴와 배금주의가 판을 치기 때문이다. 그렇게 초모랑마는 카드게임에서 최저패이면서 최고패이기도 한 에이스 카드와 같은 존재가 됐다.

저자는 두 개의 트랙을 따라 인간 탐욕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초모랑마의 우울한 풍경을 담아낸다. 첫째는 2004년 5월 네팔 사면을 통해 정상 정복에 성공하고 내려오다 실종된 닐스 안테사나라는 미국인 등반가의 행적을 추적한 것이다. 둘째는 같은 시점 티베트 사면을 따라 등정에 도전했다가 등정을 포기한 저자의 환멸에 가득 찬 등반 실패기이다.

저자의 추적으로 최고령 등정(69세)에 도전하던 안테사나가 함께 등정에 나선 아르헨티나 가이드와 2명의 셰르파(짐꾼)에 의해 정상 부근에서 버려져 숨졌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들은 하산 뒤에 이를 감추려고 당연히 구조 요청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가이드는 초모랑마에는 한 번도 오르지 않았음에도 서류와 사진을 위조한 사기꾼이었다.

저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다. 텐트와 로프, 산소통과 등반장비를 약탈당하고 악천후가 닥치자 엄청난 돈을 주고 고용한 셰르파들에게 버림받는다. 게다가 정상 정복에만 눈이 먼 등반가들 역시 위기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동료 등반가를 외면한다. 중국과 네팔 정부도 관광객의 돈에 눈이 멀어 ‘황금산’의 무정부 상태를 방치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위해 초모랑마를 찾은 중국 산악인들이 총기로 무장한 경비요원을 대동했다는 점은 이런 실태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1924년 초모랑마 등정에 도전하다가 숨진 영국 산악인 조지 맬러리는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초모랑마를 오르는 이들은 명성이나 돈을 찾아 산을 오른다. 오만과 탐욕으로 신의 영역을 넘보다 무너진 바벨탑의 전설이 21세기에도 반복되고 있다. 원제 ‘High Crimes’.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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