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챔피언’/해외 기업들]<중>환경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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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일 03시 00분


해수면 상승? “물에 뜨는 집 팝니다” 플라스틱 공해? “썩는 플라스틱 사세요”

《기차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중앙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관광안내소를 찾았다. 도시 지도를 한 장 얻기 위해서였다. 취재를 위해 방문한 모든 유럽 도시에서 지도는 무료였는데 유독 이곳에서는 2유로를 내라고 했다. ‘더치페이’라는 말을 유명하게 만든 이 나라의 장사꾼들은 위기가 다가오면 위기를 이용해 돈벌이를 한다. 왕실 사람들도 ‘왕족’이란 신분을 활용해 세계를 뛰며 비즈니스를 하는 나라가 네덜란드다. 환경 위기 또한 이들에겐 돈벌이 기회였다. 10년 전부터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자 옴스라는 회사는 ‘물 위에 뜨는 집’을 지어 팔았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때문에 지구가 몸살을 앓고, 분해 가능한 플라스틱 수요가 늘자 퓨락이라는 회사는 ‘100% 천연 재료’를 내세운 바이오 플라스틱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에게 ‘환경’은 곧 돈이었다.》

■ 네덜란드 건설사 옴스

온난화 대비 수상주택 5000채 판매
도로 열로 물 데우는 시스템 개발
냉난방 에너지 소비 절반 줄이기도


네덜란드 건설업체 옴스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자 ‘물 위에 뜨는 집’을 만들었고, 석유 가격이 오르자 아스팔트
도로로 지하수를 데워 난방에 활용하는 ‘로드에너지 시스템’을 고안했다. 사진은 물 위에 뜨는 집 조감도. 현재 이런 형태의 집이
네덜란드와 북미 지역에 5000여 채 판매됐다. 조감도 제공 옴스
네덜란드 건설업체 옴스는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높아지자 ‘물 위에 뜨는 집’을 만들었고, 석유 가격이 오르자 아스팔트 도로로 지하수를 데워 난방에 활용하는 ‘로드에너지 시스템’을 고안했다. 사진은 물 위에 뜨는 집 조감도. 현재 이런 형태의 집이 네덜란드와 북미 지역에 5000여 채 판매됐다. 조감도 제공 옴스
약 2만 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네덜란드 북부 아벤호른의 실버타운. 겉보기엔 다른 지방 소도시의 건물들과 전혀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속’이 달랐다. 이 실버타운의 냉난방 설비 설치를 책임졌던 옴스의 프로젝트 매니저 마르셀 루젠달 씨는 기자를 건물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 검은 파이프가 바로 지하수가 흐르는 관입니다.” 루젠달 씨는 보일러실 벽을 복잡하게 휘감은 검은 파이프를 가리켰다. 지난달 15일 찾은 네덜란드는 새벽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실버타운은 이미 난방을 시작했다. 실버타운의 난방은 여름철에 도로의 열기로 데워놓은 지하수를 이용한다. 이른바 ‘로드에너지 시스템’이다.

○ 불편함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다

시골마을 아벤호른에서 1913년 설립된 옴스는 처음에는 농가를 짓던 작은 건설업체였다. 하지만 점차 사업을 확장해 도로도 깔고 부동산 개발도 했다. 로드에너지 시스템도 이런 사업 확장 과정에서 나왔다. 도로를 깔다보니 여름엔 아스팔트가 끈적끈적 녹아내릴 듯 뜨겁게 달아올랐고, 겨울엔 아스팔트에 염화칼슘을 뿌려 쉽게 훼손됐다.

해결책을 찾던 옴스 직원들은 아스팔트의 온도를 연중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도로 밑에 지하수가 흐르는 파이프를 격자형으로 촘촘히 묻으면 여름에는 지하수가 아스팔트를 식히고, 겨울엔 아스팔트가 어는 것을 막아 줄 것으로 생각했다. 이는 지하수를 여름에는 아스팔트 도로의 복사열로 데우고 겨울에는 반대로 이를 차가운 지표면의 냉기로 식힐 수 있다는 뜻이었다. 평균 수온 12도의 지하수는 여름에는 2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고 겨울에는 약 7∼8도로 식는다. 이렇게 더워지고 차가워진 지하수를 300m 이상 떨어진 지하 150m 깊이의 사암층에 각각 저장하면 거대한 자연 온수탱크와 냉수탱크가 된다. 아벤호른 실버타운도 이 설비를 설치해 냉난방에 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절반 이상 줄였다.

하지만 건설 장소가 그리 많지 않았다. 지하수가 충분히 갇혀 있는 사암층이 있어야 하고, 더운물과 찬물이 섞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지역(지름 200m 이상)이 필요했다. 이들은 해외 시장을 두드렸다. 아리안 드 본트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눈이 많이 내리는 스코틀랜드의 건설업체가 이 기술을 라이선스로 구입했고, 다른 나라에도 기술 판매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 기후변화를 이용하다

10여 년 전부터 네덜란드에는 많은 비가 내려 운하가 범람하는 일이 잦았다. TV에는 세계 곳곳에서 지구온난화로 해수면이 올라간다는 경고가 줄을 이었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3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은 나라. 이런 뉴스는 매우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옴스는 이것도 사업 기회로 봤다. 한때 네덜란드의 수상가옥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와 높은 세금 때문에 땅 한 뼘 갖지 못한 사람들이 배 위에서 살았다. 옴스는 이런 풍경을 바꿔 놓았다. 해수면 상승에 끄떡없는 ‘물에 뜨는 집’을 고안한 것.

보트 위에 지붕을 씌우는 가난한 사람들의 수상가옥과는 차원이 달랐다. 알루미늄과 목재를 이용해 번듯한 2층 집을 지었다. 집이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물을 분사해 수평을 잡아주는 장치도 설치했다. 이 집 가격은 한 채에 20만∼50만 유로(약 3억5000만∼8억7500만 원). ‘뜨는 집’은 2001년 처음 개발돼 2003년부터 팔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재까지 네덜란드와 북미 지역에 5000여 채의 집을 ‘띄웠다’.

루젠달 씨는 “네덜란드에서는 호수나 운하 등의 물도 사유지(私有地)로 판매하는데 수질오염을 관리하기 위해 정부가 ‘수질보전세’를 걷다 보니 물을 소유하는 비용이 땅을 소유하는 비용보다 컸다”며 “이 때문에 떠다니는 집 개발 이후 땅보다 훨씬 쌌던 물 가격(부동산으로서의 가격)이 땅값 수준으로 크게 뛰어올랐다”고 말했다. 거래되지 않던 물을 부동산으로 거래하면서 한몫 챙긴 것이다.

아벤호른=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 네덜란드 화학사 퓨락

세계시장 장악한 천연 젖산 원료로
분해 잘되는 바이오 플라스틱 개발
비닐봉지-종이컵 코팅막 등에 활용


퓨락은 70년 이상 천연 젖산을 만들어 온 화학업체로 인공 합성물 없이 사탕무와 옥수수 등 100% 자연에서 얻은 재료만
이용해 젖산을 만든다. 이 젖산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의 원료로도 쓰인다. 이 회사 아르노 판 드 펜 부회장이
젖산과 의약품 원료 등의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호린험=김상훈 기자
퓨락은 70년 이상 천연 젖산을 만들어 온 화학업체로 인공 합성물 없이 사탕무와 옥수수 등 100% 자연에서 얻은 재료만 이용해 젖산을 만든다. 이 젖산은 자연에서 분해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의 원료로도 쓰인다. 이 회사 아르노 판 드 펜 부회장이 젖산과 의약품 원료 등의 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호린험=김상훈 기자
암스테르담 남쪽으로 80km가량 떨어진 호린험 시. 사탕무 밭과 말을 키우는 목초지 사이에 퓨락이란 화학회사가 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덩그러니 서 있는 굴뚝과 양철 탱크는 겉보기에 화학회사가 아니라 방앗간을 겸한 대형 제과점 같았다. 퓨락은 지난해 매출이 3억2560만 유로(약 5698억 원)에 이르는 중견 화학회사다. 세계 젖산 시장 점유율 70%에 이르는 절대 강자다. 이들은 공업용 원료 대신 천연 재료인 사탕무와 옥수수를 사용하고 화학 첨가제 대신 박테리아를 이용해 제품을 만든다.

○ 친환경 전통의 힘

퓨락의 주력 제품인 젖산은 인체의 근육이 운동한 뒤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자연 상태에서도 당분이 발효되면 만들어진다. 퓨락은 1935년부터 박테리아를 이용해 호린험 인근에서 수확한 사탕무로 젖산을 생산해 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젖산은 식품의 천연 방부제로 쓰이거나 음식에 감칠맛을 더하는 조미료 재료로 사용됐다. 젖산에 포타슘 등 다른 원소를 더하면 의약품에 쓰이는 재료도 만들 수 있다. 퓨락은 이 모든 것을 100% 천연 원료로 만들어 왔다.

잘나가던 퓨락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는다. 천연 젖산 대신 값싼 화학 젖산을 만드는 업체들이 생겼고 유럽의 경기도 얼어붙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매출액은 3억 유로 전후에서 맴돌았다. 2007년에는 적자도 냈다. 의약품의 원료인 포타슘을 생산하는 미국의 암염 광산이 파업에 들어간 탓이었다. 식품 첨가물과 의약품용 재료만 만들다 보니 성장에 한계가 온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퓨락의 눈에 들어온 게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이었다. 아르노 판 드 펜 화학·제약 담당 부회장은 “친환경 바람이 불면서 자연 상태에서 분해가 되는 바이오 플라스틱에 대한 수요가 로켓처럼 올라가고 있었다”며 “기존 시장만으론 안 되겠다 싶어 거의 만장일치로 바이오 플라스틱용 시장에 뛰어들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바이오 플라스틱의 원료는 바로 젖산이었다. 퓨락의 경쟁사들은 이미 일본 도요보 등 바이오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업체들에 젖산을 공급하고 있었다. 퓨락은 창업 당시부터 천연 재료와 박테리아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어 온 ‘친환경’ 기업이었다. 하지만 정작 친환경 바이오 플라스틱 시장에는 뒤늦게 눈을 뜬 셈이었다. 퓨락은 지난해 스페인 공장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바이오 플라스틱용 젖산(폴리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퓨락은 경쟁력이 있었다. 창업 이래 전해져 온 이 회사의 가장 중요한 영업비밀인 박테리아 덕분이었다. 100% 천연 재료만 사용해 젖산을 만들려면 우수한 발효작용을 일으키는 박테리아가 필수적인데, 이런 박테리아는 퓨락만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가 세계 젖산 시장의 70%를 차지한 이유기도 하다.

○ 퓨락 인사이드

지금은 바이오 플라스틱이 비닐봉지나 종이컵의 안쪽을 코팅하는 얇은 막에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업계에선 앞으로 나일론을 대신해 의류 섬유나 자동차 내부 마감재 등으로 다양하게 쓰일 것으로 보고 있다. 퓨락의 비즈니스 매니저 루드 라이헤르트 씨는 플라스틱 컵과 티셔츠를 들어 보이며 “이것이 모두 젖산으로 만든 제품”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젖산의 원료를 현재의 옥수수에서 다른 농작물이나 쓰레기, 장작, 폐기물 등으로 다양화하는 연구도 벌이고 있다. 1000여 명의 네덜란드 본사 직원 가운데 100명 이상이 관련 연구를 진행한다.

취재를 마치고 헤어지면서 라이헤르트 씨는 기자에게 “내일 아침 비행기에서 꼭 물을 한 잔 달라고 하라”며 “우리 제품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오전 프랑스 파리로 향하는 KLM항공 기내에서 물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스튜어디스는 1회용 종이컵을 내밀었다. 컵 옆면에 “이 컵은 100% 재활용되는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컵 안쪽 코팅도 자연분해되는 소재입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퓨락의 제품이었다.

호린험=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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