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애인이 양성애자란걸 알게된 날

  • 입력 2009년 5월 2일 02시 57분


◇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샤오루 궈 지음·병용란 옮김/392쪽·1만3000원·민음사

그의 일기장에 적힌 새 단어는…

한 중국인 여자가 영국 런던 히스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런 일기를 쓰고 있다.

“나는 왜 서양에 가는지 자신에게 물어봄. 왜 나는 부모님 소원대로 영어 공부 해야만 하나? 왜 나는 서양에서 졸업장 따야 하나?…하지만 그건 내 인생 아님. 내 인생과 아무 상관없는 것. 나는 서양에 인생 없음. 나는 서양에 집 없음. 나는 무서움. 나는 영어 말 못함.”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달랑 영어사전 하나 들고 런던으로 어학연수에 오른 중국인 Z.

한눈에 봐도 서툴고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들이 주인공이 서툰 영어로 일기를 써 나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주인공은 어학원에 등록하고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런던 생활에 적응해가던 중 한적한 영화관에서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소설은 세대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게 되는 두 남녀와 이들이 결별에 이르게 되는 갈등 과정이 주를 이룬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영어단어의 다양한 뜻을 배우며 일기를 써 나가는 독특한 형식으로 전개된다. 예를 들어 Z가 사랑에 빠진 남자가 사실 양성애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주인공은 ‘양성애-bisexual adj. 성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이끌리는’이라는 제목의 일기를 쓴다.

실제로 작가가 런던에서 쓰기 시작했던 영어일기가 실마리가 돼 완성한 작품이라고 한다. 비문으로 점철됐던 주인공의 영어문장이 점차 세련되게 다듬어지는 과정이 내면적 성장과 호응을 이룬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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