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위안의 詩]오규원/‘한 잎의 여자’

  • 입력 2008년 7월 31일 02시 54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이 시는 혼자 사랑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시입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가만히 좋아지는 시입니다. 연못이나 벤치에 앉아 바람에 날리는 물푸레나무 이파리를 오래 들여다본 사람은 얼마나 이 시가 가늘가늘한 떨림을 가지고 있는지, 아슴아슴한 슬픔으로 고여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지병 끝에 고인이 되신 오규원 시인의 장례식장에 나는 가지 않았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많은 선후배 문인들이 와서 애도를 표했다고 합니다.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생전에 한 번도 오규원 시인을 본 적이 없고 살아서 되도록 뵙고 싶지 않은 시인이었습니다. 말을 바꾸면 너무나 뵙고 싶은 시인 중 한 분이었지만 끝끝내 나는 그 기갈을 채워선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문장을 공부하고 시에 조금씩 눈이 떠갈 무렵, 오규원 시인의 시어들은 내가 만나 본 적 없는 맑은 형신(形神)을 가진 채 늘 정갈한 생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품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습작 시절, 가진 언어의 무력함을 핑계 삼아 자주 시인의 이 시에서 ‘순결과 자유’의 눈을 맞곤 했습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순결’을 영원히 혼자 가지는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라고 말하고 ‘여자만을 가진 여자를 사랑했던’ 시인. 정말로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를 사랑했던 시인. 시가 되지 않는 날이면 가끔 이 시를 들추어 보면서 ‘여자’를 ‘언어’로 바꾸어 불러 보곤 합니다. 정말이지 ‘언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언어’를 쓰고자 했던, 물푸레나무 속에서 잠자 본 시인.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라고 말하려면 한 잎의 그늘이 먼저 되어 봐야 합니다.

김경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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