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초록 숲 정원에서 온 편지’

  • 입력 2005년 6월 18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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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숲 정원에서 온 편지/카렐 차페크 지음·윤미연 옮김/256쪽·8500원·다른세상

‘정원사가 자연도태에 의해 진화했다면 분명 무척추 동물이 되었을 것이다. 정원사의 등뼈가 무슨 소용인가. 다리 또한 웅크리고 앉거나 무릎을 꿇거나 구겨 어디라도 쑤셔 넣을 수 있고, 심지어 목 바로 뒤에 갖다 놓을 수도 있다. 손가락은 작은 구멍을 팔 때 훌륭한 연장이 되고, 손바닥은 흙덩어리를 잘게 부수거나 나눌 때 사용된다.’

이 책은 체코를 대표하는 작가였던 카렐 차페크(1890∼1938) 자신이 정원을 가꾸고 만든 경험을 열두 달로 나눠 적은 월기(月記)다. 식물 키우는 일이나 정원 가꾸는 일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에게도 권할 만한 이유는 ‘정원 일’을 화두로 한 세상살이의 지혜와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머와 위트가 넘쳐 읽는 재미가 크다.

저자는 1월의 기다림을 지나 2월 봄의 첫 징후에 열광하고, 3월 봄에 저항하는 겨울에 신기해 한다. 또 4월은 노동, 5월은 단비의 달이며 6월은 잡초와 싸우며, 7월과 8월에는 퍼붓는 비와 꽃의 달이다. 그리하여 9월은 흙에 대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달이며, 10월은 풍요의 달이며, 11월과 12월은 깊이 파묻혀 있는 뿌리와 땅 밑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새싹에 대한 성찰의 달이다.

달별로 정원사의 땀, 고민과 조바심, 욕심과 기쁨을 때로는 투정과 과장, 유머를 섞어 가며 경이로움에 들떠 이야기하는 저자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뭔가를 기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번역자의 말대로 질주를 멈춘 휴식에 대한 갈망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발밑을 내려다보라고, 한 줌 흙을 손에 들고 흙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라고,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우표만 한 크기라도 자신의 정원을 가져야 한다고 권유한다.’

뭔가를 키우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일이다. 식물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삶의 쓸쓸함 대신 생에 대한 찬미가 이 책이 주는 메시지다.

영어로 번역한 원제는 ‘The Gardener's Year’(1929년). 국내에 2002년 7월 일어판을 중역해 ‘원예가의 열두 달’(맑은 소리)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다. 이번 책은 영어판 번역이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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