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줌인]혼선 빚는 동북아균형자론

입력 2005-04-15 18:31수정 2009-10-09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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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의 현실성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노 대통령의 핵심 참모들이 파문 진화에 부심하고 있다.

문정인(文正仁)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과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균형자’ 개념을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나섰다.

그러나 한국이 동북아 균형자 역할을 맡겠다는 구상이 충분한 실무적 검토를 거치지 않고 발표된 탓에 이를 뒷받침하는 참모들의 설명에도 일관성이 없는 실정이다.

외교안보 관련부처의 한 당국자는 “대통령이 모호한 개념을 던져 놓고 핵심참모들이 나중에 ‘그건 그렇고 이건 이렇다’는 식으로 설명하러 다니는 것은 난센스”라며 “한 국가의 ‘전략적 비전’ 결정방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균형자론이란 이런 것”=지난달 22일 노 대통령이 언급한 균형자론에 대해 가장 먼저 설명을 시도한 사람은 이종석 NSC 사무차장. 이 차장은 지난달 30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균형자론은 △열강들의 패권 경쟁의 장이었던 근대 한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 △현재 한국의 종합적인 국력 △동북아 평화번영의 미래비전을 융합한 전략적 지도라고 설명했다. 19세기의 전통적인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론과 최근 자유주의적 세력균형이론을 반반 섞은 것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문정인 동북아시대위원장은 11일 조선일보 기고에서 “한국의 균형자 역할이란 19세기 세력균형을 통해 유럽의 패권을 추구했던 영국의 균형자론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한국은 당시의 영국과 같이 동북아의 세력균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국력도 없을뿐더러 균형자 역할을 통해 역내 세력균형을 주도하거나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가 없다”라며 “힘의 균형이 아니라 인식과 가치의 균형과 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종석 차장은 14일 중앙일보를 통해 균형자론을 부연 설명했다. 이번에는 ‘적극적 역할’ 이라는 부분이 추가됐다. 이 차장은 “세력균형론은 모든 것이 군사력에 의해 좌우되고 전쟁이 빈번했던 시대의 현상유지론”이라며 “우리의 균형자론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평화를 위해 적극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너무 앞서 나갔다=노 대통령의 참모들은 ‘균형자’의 본래 개념을 중화시키기 위해 여러 설명을 하고 있으나 균형자 역할수행의 구체적인 방법과 로드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차장은 처음엔 ‘현재 한국의 종합적인 국력’이라는 자신감을 표현했지만 현재는 “이 지역에서 침략적 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도덕적 정당성”이 있다며 ‘연성국력(soft power)’이라는 개념으로 발언의 수위를 낮추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최근 “대통령이 ‘균형자(balancer)’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균형자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균형자 발언으로 파문이 인 뒤 참모들로부터 19세기 영국이 균형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설명을 듣고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고 말했다는 것.

이 당국자는 “대통령의 단어 선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며 “화합자(harmonizer) 같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나았다는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균형자 개념이 나왔을 때 중국과 미국의 세력다툼에서 한국이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 것도 개념의 혼란 때문이었다. 미첼 리스 전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한국의 미국통 인사에게 보낸 e메일에서 “한국이 한미동맹에서 이탈하려고 하느냐”고 심각히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 측은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미동맹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를 위한 안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동맹에 대해 ‘이것은 아니다’라고 얼굴을 붉히고, 역내에서 적극적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면서 한미동맹은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 것 자체가 궤변(詭辯)”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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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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