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병철]전기-전화없는 삶의 풍요

  • 입력 2005년 2월 13일 18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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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생활이 갖는 여러 이점 가운데 하나는 며칠 정도의 시간은 별 부담 없이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다. 농사란 절기에 따르는 것이라 ‘때’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 ‘때’라는 것이 촌각을 다투는 성격은 아닌 까닭에 한창 농사철을 제외하면 마음먹기에 따라 자기 시간을 마련할 수 있다.

일하다가도 마음이 내키면 어디로든 훌쩍 떠나 며칠 동안 다녀오는 여유를 즐긴다는 것. 도시의 직장생활에선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하긴 겨울 농한기가 없는 하우스 농사 등 일부 농사의 경우에는 도시 직장처럼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옛말처럼 나물 먹고 물 마시고도 느긋할 수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도시를 떠나 귀농한 이유가 돈 벌어 풍요롭고 편하게 살려는 게 아니라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단순하지만 건강하게 사는 삶 자체를 더욱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라면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덜 얽매이는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것은 중요하다.

며칠 전 전북 정읍으로 귀농한 어진이네 집에 잠시 다녀왔다. 어진이네가 그쪽으로 귀농한 지 5년 만인 지난해 산속 농장에 집을 지어 옮겨갔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인사 겸 집 구경도 하고자 함이었다. 새로 지은 집은 전에 살던 마을에서 걸어 다니기엔 쉽지 않을 정도로 한참 떨어진 외딴 산속에 있다. 전기도 전화도 없이 살아간다.

붉고 푸른 초 두 개를 밝혀 놓고 차를 나눴다. 불빛에 비치는 얼굴들이 환한 전등불 아래서 보는 모습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손님들이 온다고 어찌나 군불을 많이 지폈던지 온 방이 쩔쩔 끓었다. 때마침 창밖에선 하얀 눈이 소리 없이 내려 쌓이고 있었다. 밤 깊도록 그리운 얼굴을 마주하면서 새삼 이렇게 사는 삶의 평화로움이 온몸에 전해져 왔다. 연탄난로에 구운 고구마와 감나무에서 따 온, 얼어 있는 홍시가 어찌 그리 맛있던지 평소에 식탐이 별로 없는 편이라고 생각해 온 나 자신이 스스로 놀랄 정도로 정말 배불리 먹었다.

자연 상태 그대로 또는 열을 가하는 최소한의 요리만으로 지금까지 먹어본 그 어떤 값비싼 요리보다도 기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행복했다.

전기와 전화조차 없는 산골 집에 살면서도 별 불편 없이, 오히려 더 밝고 건강하게,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세상이 그렇게 매달리고 있는 물질적 풍요와 편리함이란 무엇인가’, ‘현대문명, 그토록 눈부시고 편리하다는 디지털 문명이란 그 정체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했다.

돈을 벌기 위해 원치 않는 일에 얽매이고, 그렇게 번 돈으로 날마다 모델이 달라지는 전자제품을 새로 사기 위해, 차의 배기량과 아파트 평수를 더 늘리기 위해 존재 자체를 송두리째 저당 잡히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그리 복잡하거나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삶이 단순할수록 삶의 만족도가 높다는 말처럼 어진이네의 삶을 보며 이 지상에서 가볍게 사는 것이 이 지상에서 더 많이, 더 충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임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눈을 찌르는 도심 불빛을 바라보며 자연을 거역하는 것이 오히려 야만이라는 말이 새롭게 떠올랐다.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이사장·녹색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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