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정글의 법칙’… 평화로운 자연 속 처절한 전쟁

  • 입력 2005년 2월 4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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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 보리수가 무너뜨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 식물은 생존과 증식을 위해 주변에 파괴적인 힘을 내뻗기도 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벵골 보리수가 무너뜨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 식물은 생존과 증식을 위해 주변에 파괴적인 힘을 내뻗기도 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정글의 법칙/장 마리 펠트 지음·한정석 옮김/216쪽·9000원·이끌리오

프랑스의 군인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19세기 후반 ‘독일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갇혀 있던 살뤼 섬의 카이옌 감옥에는 초대형 무화과나무가 자라났다. 이 나무의 뿌리들은 커다란 보아 뱀처럼 감옥 건물을 둘둘 말아 조이기 시작하고 감방 통로와 쇠창살 사이로까지 드나들었다. 결국 감옥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식물이 생존을 위해 주변의 장애물에 살의(殺意)를 드러낸 극적인 사례로 지은이가 꼽은 것이다.

프랑스의 식물학자인 지은이 장 마리 펠트는 유럽 생태연구소장이기도 하다. 그가 프랑스에서 2003년 펴낸 이 책은 물고기와 새, 갖가지 식물이 생존과 번식을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는 모습을 다뤘다.

지은이는 식물학자답게 식물들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가장 침략성을 띤 식물로 더운 지역의 호수에 주로 사는 워터히아신스를 꼽았다. 물 위의 개체가 30개이던 것이 4개월이 지나면 1200개로 늘어나고 결국엔 가로 세로 각각 100m 면적에서 전체 무게 470t이나 될 만큼 번식한다는 것이다. 이 결과 다른 수생 식물들은 거의 몰살되곤 한다. 이 때문에 워터히아신스는 미국에서는 ‘플로리다의 악마’, 남아시아에서는 ‘벵골의 공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 밖에도 조팝나물은 뿌리에서 독성 분비물을 내놓아 다른 식물들을 죽이고, 다른 조팝나물까지도 말려 버린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에서 자라는 토닌기아는 땅속에서 실그물 모양으로 자라면서 다른 식물의 뿌리에 달라붙어 영양분을 뽑아 먹으며 기생한다.

이런 식의 무한 생존 경쟁이 무제한적인 살육으로 치닫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두머리 늑대 수컷은 매년 아래 서열 수컷들의 도전을 받는다. 3년 이상 우두머리를 지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여러 마리가 힘을 모아 우두머리한테 대들기도 한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지만 승자가 결코 패자의 명줄을 끊지는 않는다. 단지 송곳니로 패자의 목을 무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 싸움을 끝낸다. 죽임과 죽임의 반복은 자칫 종족 자체의 명맥을 끊어 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인류학자 르네 지라르의 말을 인용해 “인간이 종교를 만든 것도 결국 무차별적 살육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겠느냐”고 지적한다. 인간은 무시무시한 경쟁 원칙이 적용되는 ‘정글’에서 다른 생물 종을 멸절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베푸는 관용만큼 다른 생물 종에 대해서도 파괴성을 조절하지 않는다면 전 지구적인 참극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생태학자인 지은이의 메시지다.

“석가모니는 나무가 자기한테 도끼질을 해 대는 나무꾼에 대해서도 여전히 그늘을 드리우는 모습에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나눠 가져야 할 깨달음이 아닌가.”

지은이가 전문성을 십분 발휘해 분방하게 어휘를 사용한 책이어서 꼼꼼한 정독이 요구된다. 원제는 ‘La loi de la jungle’.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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