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408…낙원으로(25)

  • 입력 2003년 9월 1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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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보통학교 5학년에 다니던 영자는 중국 상하이에서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 우한에 도착했다. 트럭을 타고 간 곳은 군화공장이 아니라 위안소였다. 영자는 나미코, 동행인 소녀는 고하나라는 이름을 받았다. 고하나는 겁탈당한 나미코를 돌봐주고 다른 위안부도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지만, 나미코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군인은 태연하게 임무를 강변한다.

나미코의 눈은 나무옹이처럼 그저 뚫려 있을 뿐이었다. 고하나는 물에서 나와 표주박으로 물을 떠서 나미코의 머리를 적시고, 비누를 머리칼에 비벼 거품을 냈다. 아이고 불쌍해라 아이고 하느님 아이고 그저 이 아이를 살려만 주세요 하느님….

나미코와 고하나는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상관 않고 총검을 들고 감시하는 병사 앞을 지나 여자들이 모여 있는 뒷마당으로 갔다. 여자들은 이름이 적혀 있는 파인애플과 귤 깡통에서 한 번 사용한 위생 색을 꺼내 대얏물에 씻고서 나무통 속에 던져넣었다. 나무통 속에는 양쯔강 강물 같은 색에 냄새가 코를 찌르는 크레졸 비누액이 담겨 있었다.

“둘 다 일본말 못해?”

“아니요, 이 아이는 할 줄 아는데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너희들, 색 없이는 절대 하면 안 돼, 어머니 아버지하고 떨어져 있는데 병까지 걸리면 어떻게 살겠어.”

“임병에 걸리면 시뻘겋게 부어오르고 냄새도 지독해. 걸을 때마다 사타구니가 아파서 주저앉고 말지.”

“606호 맞아야 돼.”

“빨갛게 빛나는 주사야. 맞으면 트림이 나오면서 코하고 입이 시큼하고, 팔이 아파서 한 일주일은 물에다 손도 못 담가.”

“나는 606호 아니었어. 자궁에 경단만한 약을 쑤셔넣고 솜으로 막더니, 하룻밤 자고 또 검사하더라고. ‘일주일 출입금지’란 팻말 걸리면 따뜻한 밥도 못 얻어먹으니까, 찬밥덩어리하고 단무지만 먹고 살았지만, 그래도 편히 쉴 수 있었지.”

“색이 밀리기도 하니까, 끼기 전에 여기다 고약 바르는 게 좋아.”

“그런데도 한동안은 바늘구멍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만큼 탱탱 부어서, 군의관이 손가락에 색을 끼고 고약 발라서 넣어주었는데, 다음날에는 당장 열명, 스무 명이 밀려오니…. 아이고 어쩌다가, 아이고 내 팔자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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