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시티 크리터스 "고양이를 부탁해"

  • 입력 2002년 11월 7일 17시 42분


시티 크리터스를 통해 고양이를 입양한 뒤 기뻐하는 뉴욕 여성들./사진제공 시티 크리터스
시티 크리터스를 통해 고양이를 입양한 뒤 기뻐하는 뉴욕 여성들./사진제공 시티 크리터스
11월이면 뉴욕의 최저 기온이 영상 10도 이하다. 영하로 내려가는 날도 있다. 빌딩 숲의 찬 바람은 체감온도를 더 떨어뜨린다. 10월 말부터 가죽잠바가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뉴욕의 겨우살이 걱정도 하나둘 늘어간다.

맨해튼의 부동산 전문 로펌에서 법률조수로 일하는 홀리 스테이버(56)도 겨울 걱정이 태산같다. 올 겨울은 예년보다 더 춥고 눈도 많이 올 것이라는데…. 게다가 뉴욕시 재정이 어려우니 시에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챙겨줄 형편도 아니고. 그녀가 걱정하는 ‘아이들’은 맨해튼의 집 없는 고양이들이다. 버려진 고양이, 다친 고양이, 주인이 이사하면서 버리고 갈 고양이….

스테이버씨는 며칠 전 맨해튼의 젊은 부부로부터 “이사하면 고양이를 키울 수 없게 된다”는 전화를 받았다. 집 주인이 애완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조건을 달아 내놓은 집에 세를 들어가는 모양이다. 주말엔 그 집에 가서 고양이 2마리를 받아와야 한다. “지붕에 고양이가 자주 나타난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퇴근 길에 들러서 안전그물로 잡아오기도 한다.

새 고양이를 만나면 그녀는 털을 자세히 뒤져본다. 벼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돈다. 빈혈증을 유발하는 벼룩이 붙어 있으면 안락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젠 고양이 이름을 지어주어야지. 아기책을 뒤지던 그녀는 “요즘은 이름 짓기가 점점 어려워진다”고 또 걱정이다. 그녀는 뉴욕시 고양이 담당? 아니다. 버려진 고양이들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일 뿐이다.

스테이버씨는 맨해튼 소호의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아니, 세마리의 고양이, 치와와 한마리와 함께 산다. 1990년대 초반 대학원에 다닐 때는 집없는 고양이들을 돌보느라 시간이 부족해 법률학 석사 논문 쓰기를 포기했을 정도다. 친구들도 모두 동물을 끔찍이 아끼는 사람들이다. ‘동물편이냐 아니냐’를 가려서 사귀기라도 하는 것처럼.

같은 생각을 가진 6명이 맨해튼의 고양이 구조 및 입양주선을 위한 ‘시티 크리터스’(www.citycritters.org)를 만든 것이 1994년. 이 때부터 매년 1000마리의 고양이들이 새 보금자리를 찾도록 도와주고 있다. 모두 낮엔 본업을 하면서 각자 돈을 내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가며 일을 맡아 한다. 스테이버씨는 이 모임 회장이다.

“뉴욕은 동물에겐 편안한 도시가 아닙니다. 개나 고양이가 길을 배회하다 담당 공무원에게 붙잡히면 동물보호센터로 보내지죠. 다행히 입양되면 살아 남지만 그렇지 못하면 안락사 처리되고 맙니다. 뉴욕시에서만 한달 3000마리 이상, 매년 4만5000마리의 동물들이 안락사당하고 있답니다.”

동물보호센터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고양이들 중 일부는 시티 크리터스의 회원들이 데려와 자원봉사자들의 집에 잠시 맡겨놓는다. 물론 수의사의 검진과 백신주사, 필요할 경우 거세나 중성화 등 불임수술이 따른다. 회원들은 맨해튼 6곳에서 입양센터를 운영하면서 새 가족을 찾아 나선다.

“고양이를 부탁해요.”

입양 신청자가 나타나면 인적사항과 직업, 근무시간, 흡연여부를 챙겨 묻는다. 가족 중 흡연자가 있으면 실내 환기가 제대로 되는지 확인한다. 입양료는 100달러. 수의사 서비스의 원가에도 못미치는 돈이다. 회원들은 고양이들을 새 집에 직접 데려다주면서 환경을 살피고 고양이들이 잘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아이 입양보다 더 까다롭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회원들은 “고양이가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강조한다.

꼬리가 반쯤 잘려 ‘땅딸이’라는 이름이 붙은 고양이는 론 로젠바움에게 입양됐다. 언론계에서 일하고 있는 로젠바움씨는 땅딸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 이야기를 ‘뉴욕 옵서버’지에 칼럼으로 자주 썼다. 땅딸이를 처음 만날 때를 그는 이렇게 적었다.

“동물보호센터의 여자 회장은 꼬리에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한 고양이를 가리키며 나에게 권했다. ‘나이 먹고 부상해 다른 사람은 입양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나는 말했다. ‘나는 새끼 고양이를 원해요.’ 그녀는 가볍게 응수했다. ‘오케이. 모두들 그러죠.’ 다음날 내가 선택한 것은 땅딸이였고 그는 우리 집으로 왔다.”

신문사측에서 독자들에게 ‘증권시장 문화 음식 또는 어떤 주제의 칼럼을 원하느냐’는 설문조사를 했을 때 의외로 ‘땅딸이 이야기’라는 답변도 많이 나왔다. 14년간 심장약을 복용한 땅딸이는 올 7월 심장병으로 죽었고 로젠바움씨의 ‘안녕, 귀여운 눈’이란 칼럼은 뉴욕의 애독자들을 울렸다.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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