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관광호텔 증기탕 허용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8시 15분


《전국 관광호텔업계가 2002월드컵대회를 앞두고 극심한 경영난을 호소하며 1994년 중단된 슬롯머신과 증기탕 등 부대사업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국민정서를 감안할 때 이미 폐지된 부대사업을 다시 허가해줄 수는 없다며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전국 각지의 관광호텔들이 숙박거부 등 실력행사에 나설 경우 대회기간 중 숙박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찬성/경영난 타개 위해 불가피▼

집안에 귀한 손님이 찾아오면 도배라도 새로 한 번 하고 손님을 맞는 것이 우리네 예의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대회가 20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관광객들의 주요한 숙소가 될 전국의 중저가 관광호텔들은 도배는커녕 존속조차 어려운 현실이다.

매년 관광사업 적자와 해외도박 및 주한 미군 영내 슬롯머신 등으로 인해 탕진되는 외화가 연간 6억6600만달러에 이른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관광호텔 사업자들을 사치향락사업자로 매도만 해왔다. 그것도 모자라 각종 세금을 중과하고 부대사업장 허가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마치 관광호텔들이 범죄자의 소굴인 것처럼 몰아붙였다. 이같이 심한 행정규제로 전국의 중저가 관광호텔들은 부도 전업 폐업 경매 등을 겪으며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려왔다.

얼마나 행정규제가 심했으면 지난 10여년간 새로 개관한 관광호텔은 전국적으로 20개 업소에 불과하겠는가. 이에 반해 러브호텔은 1995년 이후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현재 7000개 업소나 된다.

또한 문민정부시절 관광호텔 내의 슬롯머신을 폐지시킨 후 과연 이 땅에 사행성 도박은 얼마나 근절됐는가. 1993년 당시 전국 300여곳에 불과하던 오락장이 현재 3만여곳이나 된다. 특히 고액의 상금을 내걸고 불법 사행성 오락을 일삼는 3000여곳의 오락실은 범법자를 양산하고 있다. 또한 폐광지역의 강원랜드를 비롯해 정부는 경마 경륜 경정 경견 복권 등 온갖 사행성 업종의 난립을 조장하고 있다.

1995년 2년간의 유예 후 관광호텔 내 증기탕을 폐쇄하고 난 후 어떻게 됐는가. 현재 전국 어느 읍 면에 가더라도 자동차를 10분 이상 주차해 놓으면 출장 마사지 호객 전단이 자동차 유리창에 수없이 나붙는다. 출장 마사지 직업인들이 아예 가정집을 임대해 전화로 은밀히 호객 영업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관광호텔 사업자들이 월드컵축구대회를 볼모로 외국인 숙박을 거부하는 것처럼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400여곳의 관광호텔 중 이미 절반 가량이 경영악화에 시달리면서 노후한 시설, 불결한 환경, 언어소통 불능으로 인해 외국인 손님을 모시지 못하는 기막힌 현실에 처해 있다.

관광호텔업계는 관광진흥자금 저리 융자지원 등 대책 없이 외국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은 국가적 체면 손상을 가져오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에 외국관광객의 숙박을 기피하자는 결의를 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관광호텔 사업자들이 국가적 행사이며 세계적 대회를 보이콧한다고 해서 전체 사업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일본의 관광호텔에 설치된 ‘빠찡꼬’로 일본사회가 망했는가. 이는 오히려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훌륭한 외화획득 사업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계부처는 하루빨리 불법 탈법을 일삼는 오락장과 출장마사지 행위를 근절하고, 관광호텔 부대업장의 부활로 이를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도록 관계 법령을 개정하기 바란다.

이승진(한국관광호텔협회 이사·진천관광호텔 대표)

▼반대/'월드컵 볼모' 적절치 않아▼

오랫동안 경영난에 빠져 있던 지방의 관광호텔들이 최근 보인 행동은 그동안 관광호텔업계의 경영난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고민해온 필자조차 그들 요구의 부적절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첫째, 먼저 경영난의 원인면에서 현재 관광호텔업계의 어려움은 슬롯머신이나 증기탕 허가 유무에 기인하기보다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환경에 원인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9·11 미국 테러 참사, 아프간 전쟁, 미국 항공기 추락 사건 등으로 세계 관광업계는 엄청난 연쇄 침체에 빠져 있다.

둘째, 관광호텔의 경영난은 우리나라의 지방관광이 활성화되지 않은 점이 주요 원인이다. 사실상 오랫동안 수도권 등의 호텔은 성업을 누려온 반면 지방소재의 1급 이하 호텔들은 경영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컸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셋째, 경영난의 원인이 호텔 외부에 상당수 돌려지고 있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 세계 관광업계는 관광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각국의 관광호텔들이 브랜드 제휴, 스타 마케팅, 이벤트 개발, 전문 경영체제로서 체인화 도입 등 수익창출확대를 위해 노력한 데 비해 우리 관광호텔들의 서비스 차별화와 경영 선진화 노력은 충분치 못했던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방 호텔의 사업부진에 대한 이 같은 원인 진단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호텔업계가 주장한 요구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시점이 적절치 못했다. 국제적 수준의 월드컵관련 시설들이 속속 완공되는 등 준비가 잘 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월드컵대회 준비에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는 시점이다. 더욱이 전 세계가 한일간의 비교라는 관점으로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월드컵대회라는 세계적 공익을 볼모로 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요구사안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다. 그들이 요구한 슬롯머신은 국민의 사행심을 조장하고 증기탕 역시 매춘과의 연관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설사 이러한 무리한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도박중독자들이 어슬렁거리고 매춘의 음습함이 도사린 호텔이 더 이상 관광호텔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셋째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문제의 접근 방식이다. 호텔업계가 우리 정부나 시도 등 지방자치단체와 충분한 사전 대화나 협의 없이 국제축구연맹(FIFA) 등 외부에 알림으로써 전 세계 언론이 이번 사태를 주목하게 됐다. 이미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신을 크게 손상시킨 점은 정부와의 대화를 합리적이고 우호적으로 이끄는 방법이 아니다.

상당수 지방호텔이 경영난에 허덕이는 것은 부인할 수 없고 특단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작금의 경영난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 진단과 건전하고 합리적인 대안 모색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이지 손님이 왔을 때 떼쓰는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김상태(한국관광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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