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우익교과서 검정통과]'새역사모임'·시민단체 공방

  • 입력 2001년 4월 3일 18시 29분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집필한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함에 따라 이제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은 ‘제2라운드’로 넘어갔다. 얼마나 많은 중학교가 이 교과서를 채택할 것인가를 놓고 ‘채택경쟁’이 벌어지게 된 것.

‘모임’측과 이들을 지원하는 외곽단체는 가능하면 많은 중학교가 이 교과서를 쓰도록 총력전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 시민단체와 지식인은 이를 저지할 태세다.

합격판정을 받은 출판사는 5월 중순까지 교과서 견본을 만들어 문부과학성에 납본한 다음 7월 한달간 전국 470여개 지구별로 교과서 전시회를 연다. 8월경 공립학교는 각 지역 교육위원회가, 국립 사립학교는 학교장이 각각 내년 4월 신학기부터 사용할 교과서를 최종 결정해 출판사에 주문할 예정이다.

‘모임’측은 검정작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부터 이미 합격을 전제로 ‘정지 작업’을 벌여왔다. 전국 48개 ‘모임’ 지부와 이 단체를 지원하는 ‘교과서개선 연락협의회’ 등은 대부분 현(縣)의회에 “교과서를 결정할 때 현장 교사의 의견보다 교육위원회의 판단을 우선해야 한다”는 내용의 진정서나 청원서를 제출했다. 3월 중순 현재 홋카이도(北海道)와 30개 현 등 31개 광역의회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모임’의 다카모리 아키노리(高森明勅)사무국장은 진정서 등을 제출한 이유에 대해 “공립학교의 교과서채택 권한은 교육위원회가 갖고 있는데도 실제로는 교사들이 결정하고 교육위원회는 이를 추인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 배경은 자신들이 만든 교과서가 보다 많이 채택되도록 교사들을 일일이 설득하는 것보다 교육위원을 설득하는 것이 쉬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임’ 회원들은 이와 함께 회장인 니시오 간지(西尾幹二)전기통신대교수가 펴낸 ‘국민의 역사’란 책을 교육위원과 일반인에게 무료로 나눠주었다. 우익의 시각을 대변하는 이 대중서적은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문제 교과서의 ‘원본’에 해당된다.

‘모임’측은 자신들이 집필한 교과서의 시장점유율 목표를 10%로 잡고 있다. 현재 중학 역사교과서의 점유율은 도쿄서적이 41.2%로 가장 높다. 도쿄서적을 포함한 4개사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공급사는 지난해보다 1개사가 늘어난 8개사여서 ‘모임’측 목표대로 점유율 10%가 달성되면 문제 교과서는 보급률 4위에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이 교과서에 반대하는 지식인과 시민단체들의 대결의지도 만만찮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는 지난달 16일 “모임측이 교과서 채택과정에서 현장교사의 목소리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 놀랐다”면서 “앞으로 집필활동을 통해 이 교과서 채택을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사카모토 요시카즈(坂本義和)도쿄대 명예교수도 “이 교과서가 쓰이지 않도록 하려면 먼저 문제점을 납득시켜야 한다”며 “잘못된 내용에 관한 자료집을 일선교사와 교육위원회에 보내겠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문제 교과서를 검정 합격시켜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온 단체인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워크 21’은 일선교사들에게 채택을 반대하는 이유를 담은 전단을 배포하고 5월말까지 수만명의 반대서명을 받아낼 계획이다.

얼마나 많은 중학교가 이 교과서를 채택할 것인지는 일본 사회의 역사인식을 알 수 있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도쿄〓심규선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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