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과 서의 벽을 넘어 11]도쿄대 나카지마 교수

  • 입력 2001년 3월 5일 18시 39분


엘리트를 키워내는 입시준비 전문학교를 뛰쳐나와 혼자 수학자의 꿈을 키우다 도쿄대 법대생이 되고, 다시 중국철학에 입문한 후 이제는 기존의 ‘중국철학’을 넘어서려는 일본 도쿄대의 소장학자 나카지마 다카히로(中島隆博·37) 교수.

그는 근대 이후 동아시아에서 정치적 윤리적으로 이용돼 온 중국철학의 해체를 시도한다. 특히 근대화 과정에서 수입된 독일관념론의 영향하에서 관념적이고 보편적인 이론에 치중해 온 일본의 중국철학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정치적 윤리적 의도에 가려진 기존의 중국철학 대신 그 철학이 형성된 당시 사회에서 개개인의 사적인 관심과 시각이 어떻게 칸트가 말하는 ‘주관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나아가 ‘공공성’을 만들어 가게 되는가를 탐구한다.

“이제까지 철학이나 역사학 같은 학문이 추구해 온 것이 사실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성 또는 체계적인 이론이었다면,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이론 이전의 ‘원(原)사실’입니다.”

그가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갖는 ‘맛’ 또는 ‘먹거리’는 이런 ‘원사실’의 한 예이다. ‘맛’은 인간의 일상 어디에나 있지만 대단히 개인적인 취향과 판단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떻게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고 공유되고 보편화되는가 하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미적 판단이 정치적 판단으로 이어진다고 했어요. 미적 판단에 의해 어떻게 공공성이 형성되고, 정치적 공동체가 이뤄지는가를 봐야 합니다.”

나카지마 교수는 이렇게 ‘맛’과 같은 미적 판단으로부터 주관적 보편성과 공공성이 형성되는 과정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보편성 또는 공공성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아직 더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의 이런 문제의식은 법대생 시절 관심을 가졌던 공동체의 규범 형성 문제와 데리다의 해체주의에 주목하게 된 결과였다. 그는 전통 중국철학을 연구하면서 역사 속의 사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역사성’ 또는 ‘이론’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로 발전해갔다.

그는 철학이나 역사학 등의 학문이 전통적으로 관심을 기울여 온 이론의 체계를 해체하고 이론 이전의 ‘원사실’에 초점을 맞춰 기록, 또는 기록에조차 남아 있지 않은 역사적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론 이전의 구체적 삶에 대한 관심을 통해 ‘역사성’ 또는 ‘이론’을 넘어 중국철학의 살아 있는 역동성에 접근하는 그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해진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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