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중훈의 세상스크린]배우는 '카멜레온'?

  • 입력 2000년 10월 30일 18시 50분


1985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뒤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라는 영화를 히트시키자 사람들은 저를 ‘청춘스타’라 불러주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방송사 행사나 각종 이벤트에 자주 초대를 받았습니다.

80년대 말 온 국민이 민주화를 열망하던 시절 사회성이 짙은 영화 ‘칠수와 만수’ ‘우묵배미의 사랑’ ‘그들도 우리처럼’을 끝내고 나서 사람들은 저를 ‘민중배우’라 불러주었습니다. 대학 총학생회나 민주화추진운동본부 같은 곳에서 군중집회를 할 때면 저를 자주 불러주었고 그곳에선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는 민중 배우 박중훈씨”라고 저를 소개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90년대 들어와서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할렐루야’ 같은 영화를 찍었고 사람들은 그런 저를 ‘코믹 연기자’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영화전문지에선 제 특집을 다루면서 서영춘, 구봉서 선생님을 잇는 코미디언이라고까지 말하더군요.

그러다가 가끔 액션 누아르 영화 ‘게임의 법칙’이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찍은 뒤에는 “변신에 성공한 박중훈”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1987년 가수 겸 연기자인 김민종 후배가 저와 영화를 함께 찍을 때 제 차로 잠시 운전연습을 해보겠다며 후진하던 도중 트렁크 부분을 박살 낸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로는 큰 돈인 50만원 정도 견적이 나왔지만 저는 괜찮다고 하며 그냥 제 돈으로 수리를 했습니다. 김민종씨가 지금까지도 저를 마음이 아주 넓은 근사한 선배라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여러 사람한테서 들었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몇 해전 서울 강남 역삼동에서 주차문제로 어떤 사람과 크게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알려진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입장에서 일의 잘잘못을 떠나 감정을 드러내는 게 아닌데도 저는 그만 참지 못했고 아마 그 사람은 저를 평생 아주 속좁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젊은 시절 반항아 이미지를 풍겼던 배우 폴 뉴먼은 그후 영화 ‘컬러 오브 머니’에서 유들유들한 사기꾼 연기를 잘 해냈고 예전에 익살스러운 코미디를 잘 해냈던 배우 톰 행크스는 ‘필라델피아’라는 영화에서 동성애자의 진솔한 삶을 훌륭히 연기해 냈습니다. 이를 두고 일반적으로 폴 뉴먼과 톰 행크스의 연기 변신이라고 말하겠지만 사실은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들 중 하나였겠지요. 단지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고 자주 소개되지 않은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joonghoon@seromeso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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