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 기자의 That's IT]게임원리 현실에 접목… 또다른 세상 열립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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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세계에서 저는 가장입니다. 직장에선 상사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자발적으로(?) 야근도 합니다. 집에 들어가면 설거지를 하고, 간신히 눈을 뜬 토요일 아침엔 아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지만 소홀히 하면 그들이 상처받기 때문에 더 부담이 됩니다. 그게 인생입니다.

게임의 세계에서 저는 오크족의 용맹한 사냥꾼입니다. 부족의 평화를 위해 괴물을 사냥해야 하고, 길드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경험은 재미있습니다.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걸 아니까요. 그게 게임입니다.

현실은 실패를 뒤집고 ‘처음부터 다시’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부담스러워야만 하는 걸까요? 최근 게임업계에서는 ‘게임화(gamification)’라는 말이 화제입니다. 인생을 게임처럼 바라보고 재미를 부여해보자는 얘기죠.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최근 게임화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업무혁신을 이루려는 기업이나 조직의 절반 이상이 2015년까지 업무 프로세스를 게임처럼 바꿀 거라는 예상이었습니다. 가트너는 이런 사례로 영국 노동연금부를 듭니다. 노동연금부는 ‘아이디어 거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다양한 제안을 받았는데, 경품을 거는 대신 이곳에 아이디어를 올리는 시민들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순위표를 만들어 경쟁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1년 반 동안 약 4500명이 1400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해 이 중 63가지가 실제 정책에 반영됐다는군요. 게임의 원리를 응용해 큰 성공을 거둔 겁니다.

게임화 전문가인 미국의 제인 맥고니걸은 삶을 게임처럼 바라봅니다. 그녀는 500명의 참가자를 모아 다음 달 10일 미국 뉴욕 공공도서관에서 ‘미래를 찾아라(Find the Future)’라는 이름의 거대한 밤샘 게임을 벌일 예정입니다. 참가자들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컴퓨터를 이용해 각자의 미션을 수행합니다. 예컨대 ‘미국 독립선언문을 찾아라’라는 식의 과제를 받으면 관련 책을 찾고, 이를 바탕으로 ‘2021년 나는 어떤 사람이 돼 있을까’ 같은 글을 써야 합니다. 맥고니걸은 이 과정에서 게임 참가자들이 자연스레 미국의 역사나 인물들의 삶을 배울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는 게임이라기보다는 교육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참가 신청이 쇄도했죠. 재미 때문입니다. 흔히 게임은 현실 도피를 꿈꾸는 사람들의 탈출구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 게임을 접목하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립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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