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453…잃어버린 계절(9)

  • 입력 2003년 10월 28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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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와는 우근의 얼굴을 보며 과거를 더듬었다.

“우근씨는 4월 초에 태어났죠. 우근씨 형님이 나를 데리러 헐레벌떡 뛰어왔어요. 준비를 하고 나섰더니 나를 덥석 업고 뛰더군요. 그때, 형님 나이가?”

“형은 열세 살 위입니다.”

“난산이었어요. 어머니가 진통을 겪는 내내 할머니가 기도를 드렸죠. 내 이 손으로 우근씨를 받았어요. 숨을 안 쉬었죠. 그래서 우근씨 입에 입을 대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후우, 하아, 후우, 하아, 그랬더니 겨우 울음을 터뜨렸어요. 얘기를 하다 보니까 하나 둘 생각이 나는군요.

지금이야 튼튼한 다리가 놓여 있지만, 그 무렵에는 거룻배를 죽 이어댄 배다리였잖아요? 배다리를 건너면서 칠탄산쪽을 봤더니, 새빨간 초승달이 떠 있고, 강에도 달그림자가 비춰 있었어요.

나, 걱정이 돼서 댁에 들렀어요. 아이를 낳은 지 이레밖에 안 된 어머니가 가게에 나와 일하고 있었어요. 젖이 안 나와 고생하는 것 같아서, 젖을 주물러 주었죠. 이제 빨려 보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우근씨를 이렇게 껴안았어요. 우근씨가 쪽쪽 소리를 내며 젖을 빨았어요. 이번에는 오른쪽을 물려보라고 했더니, 젖을 물고서 놓지를 않는 거예요, 오호호호, 배가 많이 고팠던 게지요. 어머니가 잡아당겨 젖을 떼었더니, 하얀 젖이 내 얼굴에 튀어서, 오호호호, 다들 웃었어요, 우근씨가 놀라서 울음을 터뜨릴 만큼 큰소리로, 오호호호호.

우근씨는 기억 못하겠지만, 돌 잔칫날 초대를 받아서 미역국하고 밥하고 미나리나물을 맛있게 먹었어요. 조선사람 집에서 밥을 먹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곧 태어날 손녀딸의 아이를 위해 우근씨 이름에서 우 자를 하나 얻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우근, 정말 좋은 이름이잖아요. 은혜로운 비…뿌리로 빗물을 빨아들여 쑥쑥 자라는 나무와 풀과 꽃…은혜롭고 건강하고, 큰사람이 되어 달라는 아버님의 바람이 담겨 있는 이름. 그래요, 그래서 한 달 후 같은 날에 태어난 증손의 이름을 달우라고 지었어요. 달은 보내고 전달한다는 뜻이 있으니까, 하늘의 은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어 달라는 뜻에서.”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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