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416>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3월 27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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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조나라는 대군을 이끌고서도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싸우기에 이로운 곳을 골라 굳고 높은 누벽까지 쌓아 올렸다. 그렇다면 저들의 바라는 바는 뻔하다. 우리 본진을 끌어 내어 저희 대군으로 정면에서 승패를 가리려 함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조나라 군사들은 우리 대장군의 깃발을 보고, 우리 본진의 금고(金鼓) 소리를 듣기 전에는 결코 싸움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선봉을 섣불리 건드렸다가, 우리가 좁고 험한 곳에 몰렸다 여겨 싸우지 않고 돌아가 버릴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보내는 우리 군사 1만은 적의 공격을 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 진세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그 뒤 우리 중군(中軍)과 후군(後軍)이 한 덩이가 되어 밀고 나가 그들 1만과 호응해 싸우면, 비록 적이 20만 대군이라 해도 어렵지 않게 쳐부술 수 있다.”

그래도 그 군리(軍吏)는 한신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였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나도 속으로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 거기다가 더욱 알 수 없는 것은 그들 1만 명을 먼저 보내면서 그 장수에게 내린 한신의 군령이었다.

“장군은 조군(趙軍) 진채를 지나거든 곧바로 저수((저,지,치)水)가로 나가 진채를 벌이시오. 반드시 뒤로는 더 물러날 수 없을 만큼 깊은 물을 등지고 진을 쳐야 하오!”

때는 손자(孫子) 오자(吳子)가 병법(兵法)을 말한 지 몇 백 년이 지난 뒤였다. 물을 등지고 진을 치면 좋지 못하다는 것쯤은 신통찮은 장수라도 알고 있었다. 거기다가 한나라 장수들 중에는 지난번 수수(휴水) 가에서 물을 등지고 싸우다 쓴맛을 본 이들도 많았다.

“병가에서 배수(背水)는 흉(凶)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우리 군사는 적은데 적은 많습니다. 만약 적이 전군을 들어 몰아붙이면 우리 1만 군사는 모두 저수의 물귀신이 되고 맙니다.”

장수들 가운데 하나가 한신 앞에서 드러내놓고 걱정했다. 한신이 자르듯 말했다.

“걱정 말라. 적의 20만 대군이 너희 1만을 뒤쫓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너희는 먼저 가서 진세를 펼치고 내가 이르기를 기다리면 된다. 진여는 반드시 나의 대장기가 이르러야 본진을 움직인다.”

그 바람에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떠나기는 해도 장수들은 속으로 걱정이 많았다.

그때 성안군 진여(陳餘)는 정형 어귀에서도 한참이나 조나라 쪽으로 내려온 벌판에 멋지게 진채를 세워놓고 한신의 대군이 정형 골짜기를 빠져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20만이나 되는 대군이 며칠에 걸쳐 녹각(鹿角)과 목책(木柵)을 세우고 누벽(壘壁)을 쌓은 진채라 그 위세가 여간 대단하지 않았다. 그 안에서 한껏 거드름을 피우면서 기다리는 진여에게 살피러 간 군사가 돌아와 알렸다.

“한군이 정형 어귀 30리 안쪽에서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합쳐 3만은 되는 군사들입니다.”

그러자 곁에 있던 광무군 이좌거가 다시 한번 진여를 달래듯 말했다.

“이제라도 정형 어귀에 매복을 두어 한차례 적의 기세를 꺾어 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진여가 못들은 척 딴소리를 했다.

“광무군, 이 진채를 한번 바라보시오. 무릇 병진(兵陣)에도 그것을 펼치는 군자(君子)의 위엄이 드러나는 법이오. 정녕 군자의 위엄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소?”

그래놓고는 다시 병법이라면 혼자 다 안다는 듯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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