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79>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2월 11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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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과인이 듣기로 위표(魏豹)는 한왕을 따라 하수(河水)를 건넜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직 군사 한 명이라도 아쉬운 한왕과 작별하고 홀로 위나라로 돌아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한왕과 짜고 과인을 다시 속이려는 것은 아닌가?”

그러자 위왕 표의 사자가 펄쩍 뛰듯 두 손을 저어대며 말했다.

“아니옵니다. 우리 위왕께서 속이신 것은 대왕이 아니라 한왕 유방입니다. 한왕이 형양 성안에 들어가 한시름 놓는 것을 보고 거짓 소문을 핑계 대어 위나라로 돌아갈 허락을 얻어냈습니다.”

“거짓 소문이라?”

“위왕께서는 믿을 만한 군졸들을 시켜 위나라에 계신 어버이가 모두 깊이 병들어 오늘내일한다는 말을 퍼뜨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형양 성안에 어지간히 퍼졌을 때, 한왕을 찾아가 울며 어버이의 병구완을 구실로 돌아가기를 빌자 한왕도 허락해 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위나라로 돌아간 위왕은 곧 하수 나루를 끊고 크게 군사를 모아 한왕이 위나라로 오는 것을 막게 했습니다.”

그런 사자의 말에 패왕도 조금씩 위왕 표를 믿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전에 싸움 한 번 않고 한왕에게 항복한 일이 워낙 괘씸했던 터라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 의심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한왕은 가만히 있는가?”

그런 물음으로 남은 의심을 드러냈다. 위왕의 사자가 다시 그 의심을 풀어주었다.

“비록 용저 장군과 종리매 장군을 물리치기는 하였으나, 한왕에게는 아직 위나라를 치러 올 만한 힘은 없습니다. 거기다가 대왕께서 언제 대군을 이끌고 들이닥칠지 몰라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패왕은 곁에서 말없이 듣고 있는 범증을 보며 물었다.

“아부께서는 어떻게 보시오? 위표를 또 한번 믿어 봐도 좋겠소?”

“서위왕은 세상 보는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지난번에 싸우지 않고 한왕에게 항복한 것도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도 도읍인 팽성까지 뺏기셨는데, 그가 작은 서위(西魏)를 들어 맞서보았자 어떻게 한창 이는 한왕의 기세를 당해 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와 같이 이번에도 그는 남달리 밝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제 바람은 대왕 편에 섰습니다. 부디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대군을 일으켜 형양으로 가서 한왕을 사로잡고 천하 형세를 결정지으십시오!”

범증이 마침 좋은 기회를 얻었다는 듯 다시 한번 패왕을 부추겼다. 그러자 패왕도 더는 뻗대지 않았다.

“알았다. 가서 네 주인에게 전하라. 지난 허물은 묻지 않을 터이니, 앞으로 두 번 다시 과인의 믿음을 저버리지는 말라 이르라. 과인이 천하를 온전히 얻게 되는 날에는 세운 대로 그 공에 보답하리라.”

먼저 그렇게 위왕의 사자를 구슬려 보낸 뒤에 여러 장수들을 불러놓고 명을 내렸다.

“계포와 장(壯=항장)만 남고 모두 서쪽으로 유방을 잡으러 간다. 닷새 뒤에 대군이 팽성을 떠날 것이니 그 채비에 기일을 넘기는 일이 없도록 하라!”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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