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377>卷五.밀물과 썰물

  • 입력 2005년 2월 6일 17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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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말하라. 용저와 종리매가 과인에게 무엇을 전하라고 하더냐?”

패왕이 자리에 앉으며 전갈을 가지고 달려온 이졸에게 물었다. 이졸이 죄지은 사람마냥 지레 움츠러들며 말했다.

“경현(京縣)과 삭정(索亭) 사이에서 우리 전후군(前後軍)이 크게 무너졌습니다. 지금은 외황으로 물러나 패군을 수습하며 대왕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현과 삭정이라면 형양 부근이 아니냐? 그렇다면 유방이 벌써 1000리가 넘는 그곳까지 달아나 우리 대군을 되받아쳤단 말이냐? 또 외황이라면 형양에서 500리가 넘는 곳이다. 우리 군사가 어찌되었기에 한 싸움으로 거기까지 쫓겨났다는 것이냐?”

패왕이 치솟는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이졸이 더욱 기어드는 목소리로 싸움의 자세한 경과를 말했다.

“한왕이 많지 않은 군사로 형양성 안에서 농성한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밀고 들다 대군의 매복에 걸려 낭패를 당했습니다. 앞서간 용저 장군의 군사 3만은 성한 군사가 얼마 되지 않고, 뒤따르던 종리매 장군의 3만 군사도 태반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뒤를 받치던 환초 장군의 군사만이 온전하였으나, 그 군사로는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100리를 쫓겨 곡우에서야 겨우 흩어진 군사를 모아보니 3만이 차지 못했습니다. 이에 외황으로 물러나 대왕의 원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인은 3만으로 50만을 쳐부수었다. 도대체 적이 얼마나 되기에 3만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도 500리나 도망쳐 과인의 구원을 기다린다는 것이냐?”

“쫓기며 들은 말에 따르면 한왕은 벌써 10만의 대군을 거느렸다 합니다. 얼마가 형양 성안에 남고 얼마가 성을 나왔는지 모르나, 그날 매복에 걸렸던 우리 군사들의 말로는 성을 나와 매복한 적군만도 우리 전군(全軍)보다 결코 적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헛소문이거나 놀라고 겁먹어 잘못 보았을 것이다. 수수를 건넌 한군이 1만도 안 된다면서 그 새 10만이라니, 유방이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단 말이냐?”

패왕이 그래도 믿지 못하겠다는 연방 묻기를 계속했다. 패왕의 성난 목소리에 놀란 이졸이 덜덜 떨며 아는 대로 대답했다.

“산동이나 위나라 땅에 먼저 나가 있던 한나라 장수들이 이끈 군사가 적지 않았던 데다, 관중(關中)에서 뽑아 보낸 장정이 벌써 형양에 당도한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한왕이 형양까지 쫓겨 오는 동안 여기저기서 찾아든 패군(敗軍)이 또 몇 만은 되었다고 합니다.”

“뭐? 관중에서 뽑아 보낸 군사들이 벌써 왔다고? 그리고 홀몸이나 다를 바 없이 쫓기는 유방을 좇아 모여든 패군이 또 몇 만이나 된다고?”

패왕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는데 범증이 나서서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 그게 바로 한왕 유방입니다. 유방이 그와 같은 자이기 때문에 신은 대왕께 그자를 어서 잡아 죽이라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전 같으면 밉살맞게 들릴 소리였다. 더군다나 조금 전에 우 미인에게 들은 말이 있어 더욱 범증을 못마땅하게 여겨오던 패왕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패왕은 그런 범증의 말에 가슴부터 섬뜩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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