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노는 시간은 발효의 시간… 행복하려면 게을러져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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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가란 문명에 필수적인 것이다. 노동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일이 좋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일을 하고 남는 시간이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버트런드 러셀·사회평론·2005년) 》

‘황금연휴’를 마치고 일터로 가는 직장인의 발걸음은 무겁기 마련이다. 일에 보람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첫 월급을 받았을 때처럼 매 순간이 자아실현의 기쁨으로 충만한 건 아니다. 철학자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저자는 ‘아침이 오고 노동현장으로 돌아갈 때만큼 행복한 순간은 없다’는 말을 아쉽게도 직장인들에게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다고 했다.

저자는 근로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현대사회에 막대한 해를 끼치고 있다고 진단한다. 현대인들이 ‘모든 일은 어떤 더 큰 목적을 위해 행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다 보니 그 자체의 즐거움을 누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음식을 찬찬히 음미하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일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것 이상의 향유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이고 시대가 흘러도 성실은 직장인의 1차 덕목인데 무슨 불온한 얘기일까. 저자에 따르면 현대의 생산 방식은 노동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그런데도 한쪽에선 ‘과로사’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노동 강도를 더욱 높이며 과잉 생산을 거듭하고, 동시에 다른 쪽에선 직장에서 내쫓기는 이들이 쏟아진다.

저자는 노는 시간은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세상의 뒤편을 응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자신의 무능과 게으름에서 불행의 원인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행복하려면 게을러지라’는 처방을 내린다. 생활필수품과 기초 편의재를 확보할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려야 창의적인 생각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교육의 목표에 여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 필요한 안목을 제공하는 항목이 들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놀고 싶어도 과도한 근로 때문에 놀 기력도 없고, 놀 방법도 모르는 현대인들을 위한 사회적인 경고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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