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6>“심장 벌렁거리는 음악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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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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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아이돌 작곡가 장용진 더쇼뮤직 대표

단대부고 재학 시절, 가요 작곡과 헤비메탈 그룹 ‘각시탈’ 활동을 병행하며 이중생활을 했다는 장용진 씨. 이제 직접 노래는 못하지만 듣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더쇼뮤직 제공
단대부고 재학 시절, 가요 작곡과 헤비메탈 그룹 ‘각시탈’ 활동을 병행하며 이중생활을 했다는 장용진 씨. 이제 직접 노래는 못하지만 듣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더쇼뮤직 제공
1990년대 중반은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1992년) 이후 수많은 댄스 그룹이 쏟아져 나오면서 현재 아이돌 중심 케이팝 붐의 초석이 된 시기다. H.O.T와 젝스키스 등 ‘아이돌 1세대’가 거대한 팬덤을 일으켰다.

H.O.T의 ‘캔디’(1996년)와 ‘행복’, UP의 ‘뿌요뿌요’와 ‘바다’, 태사자의 ‘도’(이상 1997년)를 만들며 1세대 아이돌 작곡가로 활약한 장용진 더쇼뮤직 대표(36). 그는 당대 히트 작곡가이자 가수(그룹 ‘루팡’ ‘동자’ 멤버)로 활동했는데도 언론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그는 1999년 최창민 2집(‘그녀의 뒤엔 항상 내가 있었다’ 작곡) 이후 가요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갑작스러운 ‘퇴장’ 후 인터넷에는 ‘몹쓸 피부병에 걸려 약초를 캐러 다닌다’ ‘폭력배까지 동원된 작곡 압박을 못 견디고 숨졌다’는 소문까지 퍼졌다. 지난해 큰 인기를 누린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 ‘캔디’ ‘행복’ 등이 삽입되면서 그의 곡은 오랜만에 재조명됐다.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녹음 스튜디오에서 장 씨를 만났다. 그는 “숨으려 했던 건 아니다. 인터넷 루머를 보고 황당했다”며 활짝 웃었다.

그가 풀어낸 뒷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장 씨는 단대부고 1학년 때 작곡한 ‘1024’가 혼성그룹 UP의 1집에 담겨 히트하면서 가요계에 들어왔다. 고교 때부터 얼굴, 노래, 싸움 실력까지 뛰어났던 ‘대치동 장용진’의 입소문을 듣고 가요 기획사가 “UP의 멤버로 데뷔하자”고 제안해왔다.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강렬한 남성 그룹 조직을 꿈꿨던 그는 UP 멤버가 되는 대신 자신의 생일(10월 24일)을 제목으로 붙인 곡 ‘1024’를 건넸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 연주를 시작한 장 씨는 초등학교 때 작곡을 시작했다. ‘작곡 신동’ 이야기는 SM에도 들어갔다.

“H.O.T라는 남성 그룹을 만드는데 멤버로 들어오는 게 어때?” 그는 이번에도 멤버 합류 대신 고교 때 작곡해둔 ‘캔디’를 건넸다. 그는 ‘캔디’에 이어 UP의 ‘뿌요뿌요’, H.O.T의 ‘행복’, 태사자의 ‘도’를 차례로 히트시켰고 여러 기획사에서 수천만 원을 싸들고 그를 찾아왔다.

그의 진짜 꿈은 가수였다. ‘(서)태지 형’이 그의 역할 모델이었다. 1997년 ‘루팡’, 1998년 ‘동자’를 조직해 무대에 섰지만 실패했다. “한창 작곡 일거리가 밀려들 때 일주일에 10시간밖에 못 자면서 캔커피와 줄담배로 견뎌냈죠. 1997년 성대 결절이 왔어요. 수술 후부터 목소리가 안 나왔고 큰 좌절감이 밀려왔죠.”

그는 “2000년 무렵, 제 성향과는 다른 히트 곡만을 반복해 요구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면서 작곡 활동까지 접었다”고 했다. “동요 같은 밝은 곡으로 유명해졌지만 늘 강한 힙합을 하고 싶었죠. 세상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더군요. 혼란스러웠어요.”

그는 2001년 제작사를 차리고 남성 댄스 그룹 제작에 뛰어들었지만 계약 문제로 송사에 휘말렸다. “당시 폭력배가 찾아와 가요 제작을 하고 싶은데 곡을 달라고 한 일도 있었어요. 3일간 설득해 그냥 돌려보냈죠.”

장 씨는 최근까지 게임과 독립영화의 음악 제작에 참여해왔다. 크레디트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탓에 그의 근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2008년, 자신의 페르소나(예술적 분신)가 돼줄 신인 여성 가수 소원을 만나 제작의 꿈을 부활시켰다. 장 씨는 “요즘 케이팝 붐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용감한형제, 신사동호랭이 같은 작곡가들은 저와 비슷한 길을 걸었더군요. 너무 잘하고 있어요.” 그는 지난해 12월 소원의 데뷔곡 ‘너를 보다’로 가요계에 돌아왔다.

“90년대 작곡가에 머물면 안 되죠. 제2의 음악 인생을 시작할 때입니다. 이제 노래는 못 부르게 됐지만. 듣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음악을 만드는 게 여전한 저의 숙제입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장용진#더쇼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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