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한류 실핏줄’ 흐른다/기고]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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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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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파리의 ‘노란 샤쓰’, 2011년 파리의 K팝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1960년대 실력파 가수는 두 부류였다. ‘귀국 리사이틀 전문’ 가수나 ‘이제 막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가수였다. 요즘으로 치면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가수인 셈이다.

귀국 리사이틀 전문 가수란 김시스터즈, 패티김, 윤복희처럼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다가 외국으로 건너가 활동하는 가수들이었다. 김시스터즈는 1959년 미국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해 ‘찰리브라운’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6위에 올랐다. 윤복희는 1963년 ‘코리안 키튼즈’를 결성해 동남아를 거쳐 영국에서 활동했다. 1967년 잠시 귀국해 가진 공연의 실황 음반이 제작됐는데 이 음반의 재킷 사진으로 그는 미니스커트 붐을 일으켰다.

‘이제 막 동남아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이라는 수식어를 만들어낸 가수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부른 한명숙이다. 1961년 발표된 이 노래는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과 동남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동남아 각국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했다.

한류 가수 1호는 패티김이나 윤복희가 아닌 한명숙이다. 우리말로 된 노래로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의 ‘노란 샤쓰…’는 프랑스의 샹송 가수 이베트 지로가 우리말로 불러 앨범을 따로 낼 정도였다.

1970년대 한류 가수 계보는 정훈희가 잇는다. 그는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 출전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수상했다. 공교롭게도 ‘안개’ 역시 지로가 우리말로 취입해 앨범을 냈다.

하지만 한류의 기원을 한명숙과 정훈희에게서 찾기에는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든다. 이난영 채규엽 남인수 백난아가 일본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가진 때가 1930년대였다. 1960년대 초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노래 ‘카스바의 여인(カスバの女)’은 ‘타향살이’와 ‘목포의 눈물’을 작곡한 손목인의 곡이다. 손목인은 ‘구가야마 아키라(久我山明)’란 예명을 썼기 때문에 이 노래가 한국 작곡가의 곡이란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이후 김연자 이성애 계은숙 조용필의 노래가 일본에서 유행했고 가라오케의 등장 이후 한국 노래 열풍은 들불처럼 번졌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카라나 동방신기도 존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서, 영어로 노래한다고 비틀스마저 외면했던 그곳에서 한국의 아이돌 가수들이 우리말로 춤추고 노래해 현지 팬들을 열광케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말로 우리 가요를 부르던 이베트 지로, 정훈희와 한명숙, 이난영과 손목인이 차례로 떠올랐다.

박성서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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