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답한다]Q: 인류는 왜 박테리아 정복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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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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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항생제 내성 탓… 시간과의 싸움

《유럽에서 박테리아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면서 과연 인류가 박테리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지 궁금합니다. 박테리아에 맞서 온 기간도 오래됐고 의학기술도 발달했는데 왜 정복을 못했을까요? (ID sumi****)》

최근 독일에서 대규모 식중독 사건이 발생했다. 이 식중독은 장출혈과 콩팥 기능을 저하시키는데, 지금까지 2000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해 22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건은 대장균에 오염된 채소가 그 원인이며, 문제의 대장균은 과거에 발견된 적이 없는 특이한 유전자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박테리아의 맹독성으로 인해 유럽 사람들은 채소를 기피하는 등 박테리아 공포에 휩싸여 있다.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모든 항생제가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와는 성격이 약간 다르지만 박테리아에 의한 인류 위협을 연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인류가 처음으로 박테리아를 본 것은 1675년의 일이다. 레벤후크가 현미경으로 물을 관찰하여 움직이는 작은 동물, 박테리아를 발견한 것이다. 바로 이 작은 동물이 전염병을 일으키는 원흉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다시 200년이 걸렸다. 그리고 1945년에 페니실린을 개발함으로써 마침내 인류는 박테리아에 맞서 싸울 창(항생제)과 방패(백신)를 갖게 됐다.

그러나 곧바로 박테리아의 반격이 시작됐다. 내성 박테리아가 출현해 페니실린이 듣지 않게 된 것이다. 이에 인류는 스트렙토마이신을 개발했다. 그러자 다시 이 항생제에 내성박테리아가 나타나고, 또 다른 항생제가 개발되고. 이렇게 40차례 장군-멍군을 반복한 결과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류가 개발한 거의 모든 항생제에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통의 발달과 무역의 증가는 슈퍼박테리아의 확산을 부추기고 있다. 사실 항생제는 인류의 발명품이 아니다.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은 자기 주변의 박테리아를 죽이려고 곰팡이가 분비하는 자연 항생제다.

여기에 맞선 박테리아의 생존전략이 바로 항생제 내성 유전자의 기원이다. 인간이 지구상에 출현하기 전부터 박테리아는 내성 유전자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항생제에 견디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항생제로 박테리아에 덤비는 것은 애초부터 실패가 예정된 싸움이었던 셈이다.

항생제의 한계가 드러나자 과학자들은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박테리아를 잡아먹는 바이러스(박테리오파지), 독소를 중화하는 항체, 감염을 막는 백신, 새로운 구조의 화학물질 등이 현재 연구되는 치료법들이다. 이들 가운데 유망한 후보는 임상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여기에 수천억 원의 돈과 10여 년의 시간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환자도 많고 평생 먹어야 하는 약과 달리 박테리아 치료제는 쓰는 기간도 짧고 환자도 적어서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어렵다. 내성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제약회사들이 이 분야에서 떠나버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슈퍼박테리아의 극복은 어떻게 이 분야에 투자를 끌어들이느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전염병 퇴치에 전 재산을 기부한 빌 게이츠는 구매력이 없는 사람도 시장에서 힘을 가질 수 있는 ‘창조적인 자본주의’를 제안했다. 여기에 대한 논의는 필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영역이므로 사회과학자의 도움이 필요하겠다. 새로운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현재 남아 있는 항생제마저 듣지 않는 진짜 슈퍼박테리아가 출현하지 않도록 우리는 항생제를 아껴 쓰면서 시간 끌기 작전으로 버텨야 한다

오명돈 서울대 의대 교수 감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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