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 교수의 패션 에세이]<18>입고 싶은 패션이 윤리적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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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H&M이 선보인 ‘H&M 컨셔스 파티 컬렉션’은 유기농 면, 재생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들었다 H&M제공
지난해 말 H&M이 선보인 ‘H&M 컨셔스 파티 컬렉션’은 유기농 면, 재생폴리에스터 소재로 만들었다 H&M제공
새해를 맞으면 늘 지난 한 해 발자취를 돌아보며 잘한 일 못한 일들을 꼽아보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어느 때보다도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너그럽고 자비로워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요즘은 패션을 통한 윤리와 자비로움에 대한 개념이 바뀐 듯하다. 예전 같으면 바자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품목 중 하나가 의류였다면 이제는 지나치게 흔해져 아파트 단지 곳곳마다 의류수거함에 넘쳐난다. 값싸고 패셔너블한 의류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의류가 하나의 소장품이라기보다 한때의 유행을 반영하는 소모품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윤리와 자비로움에 대한 패러다임은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심각한 공해와 환경오염, 자연생태계의 파괴 등으로 1980년대 말부터는 에콜로지(ecology·생태학)풍의 디자인이 유행했다. 에콜로지 패션의 특징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옷 모양을 내기 위해 천연 섬유를 주로 사용하고 천연 염료로 염색하며 자연스럽고 편안한 스타일을 추구했다.

그 후 1990년대에는 리사이클링(recycling·재활용)의 개념이 등장했다. 리사이클링 패션은 과장되지 않은 심플한 실루엣을 강조하며 폐품에서 수집한 다양한 천을 모아 만든 패치워크 의상 또는 폐품을 활용한 그런지룩(grunge look·지저분하고 남루한 패션)이나 썩는 비닐을 이용한 일회용 의복 등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지속 가능한 개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친환경적인 패션이 자연에 귀의한 종교인이나 시위하는 환경운동가의 전유물이기를 거부한다. 멋지고 스타일리시하지만 알고 보면 환경과 친구 할 만큼 가격이 되는, 말 그대로 ‘에코 프렌들리(eco-friendly·친환경적) 소재를 쓰고 공정을 거친 후에 윤리적이고 자비로운 소비를 강조한다.

한 벌의 원피스가 있다고 치면 페트병을 가공한 재생섬유에 다림질이 필요 없게 구김 방지 공정을 거쳐서 다리미를 사용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고, 친환경 염색 공정을 거쳐 세탁할 때의 폐수 오염도를 줄인다. 또 공정무역을 통한 면을 사용할 경우는 저개발국가의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받게 하거나 의류 판매의 수익금 일부가 환경보호단체로 기부돼 윤리적이고 자비로운 실천을 하게 한다.

실제 윤리적이고 자비로운 실천은 우리 선조들이 이미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남는 천 조각을 모아 화가 몬드리안 뺨치게 만드니 색과 면의 조화를 창조했으며, 쑥쑥 크는 아이들에게는 두어 치수 큰 옷을 입히면서도 예쁜 색단추를 달아 폭을 조정하게 하거나 밑단은 두툼하게 걷어 어느 스타일리스트 못지않게 맵시를 강조했다. 못 쓰는 스웨터는 올을 풀어 주전자의 증기를 한번 쏘인 후 새롭게 가족들의 목도리며 장갑이며 모자로 변신시키는 마법도 부리지 않았던가.

윤리적이고 자비로운 패션을 강요하기보다는 패션의 초심이 무엇인지 알기를 권하고 싶다. 패션은 입고 싶어야 한다. 그래야 재생해서 더 이상 쓸모없는 새로운 쓰레기가 또 다시 생기지 않는다.

패션디자이너·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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