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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명사들의 사진사랑 이야기]<13>선우중호 광주과학기술원 총장

입력 2011-03-04 03:00업데이트 2011-05-0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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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처럼 우직하게 물처럼 유연하게
자연은 일러주네 조화롭게 살라고
자연에는 이질적인 물과 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작가는 이런 모습을 흑과 백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더욱 깊은 사진적 감동으로 이끌어 낸다. 강원도 영월(2003년). 선우중호 씨 제공자연에는 이질적인 물과 돌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존재한다. 작가는 이런 모습을 흑과 백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더욱 깊은 사진적 감동으로 이끌어 낸다. 강원도 영월(2003년). 선우중호 씨 제공
《자기만의 사진 세상이 있다. 남들이 눈길을 주지 않는 물, 돌, 바람, 나무 등의 소재에 관심을 갖는다. 아날로그 흑백사진을 더 좋아한다. 사진 자체만큼 사진을 만드는 일련의 과정도 즐긴다. 이런 사진 취향을 자연에 비유하면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는 것은 우직한 돌 같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즐기는 것은 물과 같다. 실제로 그는 물의 흐름을 돌로 막는 등의 연구를 하는 수문학(水文學·hydrology)자이기도 하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선우중호 총장(71).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한결같이 겸손하고 남을 잘 배려한다고 얘기한다. 흑백의 자연과 풍경을 좋아하는 사진적 취향이 개인의 성격이나 인품과 무슨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가 어떤 사진관(觀)을 가지고 있는지 총장 집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사진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언제부터인가요.

“1998년 오래전부터 갈망했던 사진을 제대로 배워보자고 모 대학에서 개설한 사진아카데미에 등록한 게 시발점이에요. 대학교 총장 하던 사람이 정규 학위과정에 들어가는 것이 뭣해서 아카데미 과정에 몰래 등록했어요. 물론 얼마 가지 않아 들통이 나버렸지만요. 지금 생각하면 개론적인 얘기들이라 사진 찍기에 도움은 되었지만 차라리 학위과정을 했으면 사진을 제대로 공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해요.”

―그때 처음 사진을 알았나요.

“애초에는 사진에 대한 호기심보다 카메라의 첨단 메커니즘 매력에 끌린 공학도 시절이 있었어요. 대학 4학년 때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당시로선 선망의 대상이던 독일제 카메라를 과감히 샀는데 그게 사진과의 첫 인연이에요. 그때는 경치 좋은 곳이나 어디서 기념사진을 찍는 정도였지요. 지금 그 당시 사진들을 보면 남들이 가보지 않은 곳을 갔다 왔구나 하는 기록 정도이니 제가 사진을 했다고 할 순 없겠죠.”

선우 총장이 사진을 제대로 시작한 1998년은 딸의 고액 과외 문제로 서울대 총장을 그만둔 해다. 당시로선 그는 물론이고 온 식구가 깊은 충격을 받았을 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잡지 못하는 일생일대의 시련에 빠졌던 시간. 그에게는 다시 일어설 계기가 필요했다. 그때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카메라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친구가 되어 주겠노라고. 2000년에 그는 서울대 교수로 복직했다.

―카메라가 어떤 위안을 주었나요.





“시간이 많으니까 그동안 준비만 했던 사진을 ‘제대로 하겠다’ 생각하고 덤벼들었습니다. 적어도 몰입해 사진을 찍는 순간만큼은 주변의 모든 어려움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점차 아픔은 사라졌고 마음에는 평화가 왔습니다. 사진을 찍으러 나가면 자연이 나를 위로하고 다시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러니 사진은 내게 너무나 고마운 존재죠.”

위기를 사진 찍는 취미로 극복한 선우 총장은 그때부터 산야를 누비며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들을 찾아서 흑백사진 작업을 이어갔다.

―사진을 찍는 주요 소재가 자연과 풍경입니다. 제일 처음엔 인물사진을 하셨다고 들었는데….

선우중호 총장선우중호 총장
“오래전에 외국에서 유수프 카르시의 사진전을 보고 인물사진을 흑백으로 찍고 싶었어요.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은 특별한 인물에게 접근하는 것이 어렵고 무엇보다 내 자신을 충족시키자고 멀쩡한 사람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일은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몇 번 시도해 보다가 제게 가장 무난해 보이는 자연을 택했지요.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아무리 여러 번 찍어도 싫다 하지 않으니 더없이 좋고요. 게다가 시시각각 빛에 따라 변화하는 자연풍경은 무궁무진한 피사체가 되니 뭘 찍어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잖아요.”

―그렇다면 소재를 한정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돌, 물, 소나무, 산 등과 같이 자연 소재 중 우리나라의 정서와 맞을 뿐만 아니라 색상도 단순하여 흑백사진으로 표현하기에 좋은 대상을 고른 것이죠. 남들이 찍는 비슷비슷한 풍경사진을 찍기보단 소재를 한정시켜 좀 더 심화하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처럼 찍어보자 생각했어요.”

―돌과 물은 어찌 보면 서로가 상당히 이질적인 대상들입니다.

“물론 하나는 형체가 없이 흐르는 것이고 하나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요. 물이 흐르는데 돌이 저항하긴 하지만 자연이란 아주 유연하게 돌도 살고 물도 흐르게 하는 조화를 이루게 만듭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조화롭게 살라고 교훈을 주는 것인지도 모르죠. 사진 역시 그 조화를 찍으면서 감동을 느끼는 것 아닌가요.”

―자연과 풍경 사진을 찍는데 어떤 방식이 필요했나요.

“일단 자연 풍경사진의 대가 언셀 애덤스의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 사진을 보고 나선 이 사람처럼 찍어 보려고 중형 카메라에서 대형 카메라로 바꿔 보려고 했죠. 하지만 사진은 기계보다 사람의 생각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 일단 흑백으로 나름의 풍경을 찍어보자 생각했어요.”

―사진을 찍을 땐 미리 장소를 정하고 가십니까.

“강화도면 강화도 그런 식으로 방향 정도는 정하지만 구체적으로 잡진 않아요.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을 가봐야 비슷한 사진만 찍잖아요. 그냥 어슬렁거리다 보면 그날의 기상 상황에 따라 생각지도 않은 엉뚱한 소재에서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하곤 해요. 그렇게 찍은 사진 중에서 만족스러운 사진들이 가끔 나와요.”

―흑백사진은 뇌에 즐거움을 준다고 말씀하셨어요.

전남 보길도(2007년).전남 보길도(2007년).
“제가 보기엔 흑백과 컬러는 소설을 읽는 것과 영화를 보는 정도의 차이라는 느낌이에요. 소설은 어떤 상황을 떠올리며 읽게 되잖아요. 반면에 영화는 근사하다 생각하는 순간 이미지가 지나가 버리잖아요. 컬러는 남겨 놓는 것이 없는데 흑백은 마음에 찡하게 뭔가를 남기는 것이죠. 또 흑백은 실상에 비해 신비스러운 느낌이에요. 사진을 보면서 저 꽃은 무슨 색깔이었을까 궁금해하기도 하잖아요. 사진이 생각하게 만든다는 거죠.”

―흑백사진의 묘미는 무엇인가요.

“흑과 백 사이에는 회색 톤을 비롯한 다양한 색깔이 존재합니다. 그 다양한 그라데이션(계조)을 즐기는 것도 묘미예요.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미세한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죠. 이렇게 표현한 흑백사진에는 그 어둡고 단순한 색깔을 통해 삶의 엄숙함, 고달픔과 같은 철학적 사유도 담을 수 있죠.”

―흑백사진을 찍는 총장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일단 피사체에 흑백을 대입하는 거죠. 사진을 찍으면서 세상을 흑백으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을 늘 가지게 돼요. 예를 들어 사물을 흑백으로 그려보면 빨간색은 진하지 않은 검은색, 노란색은 약간 어두운 흰색 정도가 되나요? 그리고 피사체의 콘트라스트(대비)는 노출이 정상일 때 어떻게 나올 것 같다까지 생각하지요. 그것을 염두에 두고 사진을 찍을 때 노출을 가감하거나 암실작업에서 필름을 증감 현상 시키거나 다양한 인화지를 쓰는 방법으로 내가 원하는 사진이 나오도록 합니다.”

―늘 필름카메라를 쓰십니까.

“디지털카메라는 주로 컬러사진을 찍을 때 사용합니다. 저는 아직도 흑백사진은 기계식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흑백필름의 현상과 인화까지 암실에서 직접 합니다. 제가 직접 흑백의 미세한 톤을 조정하면서 사진이 만들어지기까지 온몸으로 느끼는 일련의 작업 모두가 저에게는 ‘사진’입니다. 디지털프린트의 경우 은염사진같이 섬세한 부분까지 표현되지 않는 단점이 남아있어요.”

―사진을 찍으면서 한계나 벽이라고 느낀 적은….

“어느 날 작업한 사진을 펼쳐 놓고 보니 다 똑같아 보였어요. 개성도 없었고 남들과 비슷한 사진만 열심히 찍었을 뿐이었죠. 거기가 아마추어의 한계 같아요. 대가들의 책이나 사진집을 봐도 그것은 아류일 뿐 내 사진이 아니잖아요. 저는 계속 사진을 하고 싶어 작은 벽이나마 스스로 넘었어요. 자신만의 분야를 갖췄어요. 나름의 주제나 소재를 구체화해서 찬찬히 생각하면서 사진을 다시 찍기 시작했죠. 피사체를 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인간과 닮은 것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고요.”

―고희 기념 사진집 ‘패미리 존’이 2009년에 나왔지요.

“사진집은 처음인데 가족의 사진도 실려 가족 사진집이 됐죠. 제 사진은 흑백이고 식구들 사진은 컬러입니다.”

―그러고 보니 가족이 모두 사진을 찍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으니까 처도 대학 때 잠깐 했던 사진 취미를 2000년쯤 다시 시작했어요. 4∼5년쯤 전에는 두 딸도 사진을 배웠죠. 큰애는 우리랑 같이 다니다가 사진을 배웠고 둘째는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사진을 배워 사진이 감각적이에요. 집에서 서로 찍은 사진들을 비교해 보면서 격려하는 일은 가정의 화목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저처럼 노년에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갖는 것은 행운이에요. 부부지간에 골프나 운전을 가르치면 바로 싸움이 나잖아요. 사진은 각자 주관대로 찍으니 부딪칠 일이 없어요. 부부간에 사이가 좋길 원한다면 같이 사진 찍기를 권합니다.”

서울대 총장 이후에도 명지대 총장, 대학총장협회 회장 등 그동안 폭넓은 사회활동을 해왔던 그는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학자이자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는 자신과 가족의 사진집 ‘패미리 존’ 맨 뒤에 이런 식으로 사진과 인생을 피력한다.

“사진으로 나를 과시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피사체를 찾아 사진을 찍고 그것을 보는 즐거움에 만족하니 마음이 너무 편하고 즐겁다. 사진을 찍으니 여기저기 여행을 해서 큰 재미이고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져서 좋다. 그동안 지나온 나의 생활을 보면 보람도 있었지만 너무 정신적인 압박감 속에 살아온 것 같아 이제는 여생을 이런 즐거운 생활을 향유하면서 살아갈까 한다.”

그는 수문학자로서 나머지 인생을 흐르는 강물처럼 사진에 몸을 맡겼다. 그는 진짜 인생을 아는 ‘물’이자 ‘돌’이다.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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