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들여다보기’ 20선]<8>집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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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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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살 꼬마 꿈속을 파고든 내전
◇집으로 가는 길/이스마엘 베아 지음·북스코프

《“살아 있는 한, 더 나은 날이 오고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이 있단다.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희망을 잃게 되면, 그때 죽는거야.”》

이 책을 쓴 이스마엘 베아는 1980년 서아프리카 남쪽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났다. 시에라리온은 1787년 영국에서 옮겨 온 해방 노예들이 기틀을 만든 나라다. 1808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61년 독립했다. 그 후 족벌 세습정치와 군부 쿠데타를 겪으면서 내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스마엘은 열두 살이었던 1993년 그 피비린내 나는 살육장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이웃 마을 마트루종에서 열리는 장기자랑 잔치에서 힙합 댄스와 랩 솜씨를 뽐낼 꿈에 부풀어 있던 날이었다. 형 주니어, 친구 탈로이와 함께 신이 나서 달려 나간 길. 돌아갈 길은 그날로 영원히 지워졌다.

집을 떠난 사이 고향 마을 모그브웨모는 반군의 습격을 받았다. 아버지를 찾으려고 집에 돌아가기로 마음먹었지만 총격을 받아 몰살당한 사람들의 시체 더미가 세 소년의 눈앞을 가로막는다. 순진한 미소가 가시지도 않은 채 뻣뻣이 굳어버린 아기의 얼굴. 총알을 막아준 품속 아기 덕에 목숨을 건진 여인은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가까스로 잠에 빠져들어서도 총알이 날아와 옆구리에 박히는 꿈을 꿨다. 사람들은 나를 도와줄 생각도 않고 저마다 살겠다고 내 옆을 지나쳐 달려갔다. 숨을 곳을 찾아 덤불로 기어가려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불쑥 나타나 총을 들고 내 머리 위에 버텨 섰다. 그는 내가 총을 맞은 자리에 다시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현실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 “이런 미친 세상이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동생을 타이르던 형 주니어는 몇 달 뒤 생사를 모른 채 행방불명이 된다. 총알 세례가 그나마 덜 쏟아지는 방향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목숨을 부지하던 이스마엘은 어느 날 문득 AK-47 소총을 손에 들고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대나무를 깎아 만든 장난감 총을 들고 친구들과 마을 커피 밭에서 전쟁놀이를 하던 소년의 손에 실탄과 진짜 총, 대검이 쥐어진 것이다.

“가재들이 시체의 눈을 노리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잘려나간 팔다리와 산산이 부서진 두개골이 늪지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우리는 시체를 이리저리 뒤집어 탄약과 총을 챙겼다. 이제 시체들이 두렵지 않았다. 나는 경멸하는 마음으로 시체들을 발로 차서 뒤집었다.”

마약에 취해 미치광이 살인기계로 변해 가던 이스마엘은 부상을 당해 입원한 것을 계기로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의 도움으로 전쟁터를 빠져나온다. 후원자를 얻어 17세 때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뉴욕 유엔국제학교와 오벌린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외교관계위원회, 해병대 전쟁연구소 등에서 전쟁터 어린이들의 참상을 증언했다. 유니세프가 주관한 ‘소년병 근절을 위한 국제회의’에도 여러 차례 연사로 참석했다.

그것으로 좋은 걸까. 지옥 같은 전장의 체험담과 구원을 엮은 이야기. 책을 덮고 남는 것은 선뜻 한 갈래로 정리하기 어려운 쓴맛의 혼란이다. 이스마엘을 구원하고자 물심양면 힘을 다한 사람들의 진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는 정말 구원받았을까. 포로들의 발등에 총을 쏘며 희망의 상실을 즐겼던 영혼은, 그리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걸까. 이스마엘은 지금 핏빛 가신 편안한 꿈을 꾸고 있을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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