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들여다보기’ 20선]<3>아프리카를 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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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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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하늘의 금발 파일럿
◇아프리카를 날다/베릴 마크햄 지음·서해문집

《“아프리카는 신비롭다. 그곳은 자연 그대로의 세계다. 찌는 듯한 열기의 지옥이다. 사진가들의 낙원이요, 사냥꾼들의 발할라(북유럽 신화에서 전사자들의 영혼이 향연을 받던 장소)요, 도피주의자의 유토피아다. 아프리카는 당신이 원하는 모습이 되어준다. 어떤 풀이를 갖다대도 받아준다. 그것은 죽은 세계의 마지막 흔적이며, 빛나는 새 세상이 담긴 요람이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아프리카는 무엇보다 ‘고향’이다.”》
1936년까지 30여 년간을 아프리카에서 보낸 한 여인이 그린 아프리카 풍경이다. 1902년 영국 레스터에서 태어난 저자는 1906년 아버지를 따라 케냐로 이주해 원주민 아이들과 놀고 사냥하며 스와힐리어와 난디어, 마사이어를 배웠다. 금발에다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였던 저자는 동시대의 배우 그레타 가르보를 닮은 매혹적인 인상과는 달리 농장을 개척한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며 자유롭고 모험적인 삶을 살았다.

10대 후반에 아프리카를 떠나 까다롭기로 유명한 영국 경마클럽에서 발급하는 경주마 자격증을 여성 최초로 땄고 나이로비의 경마대회에서는 명조련사로 이름을 날렸다. 1931년에는 비행기 조종사로 입문해 이후 아프리카 곳곳으로 승객과 우편물을 날랐다. 1936년 9월에는 대서양의 제트기류를 가로질러 동에서 서로 단독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서에서 동으로 횡단한 최초의 여성 비행사는 어밀리어 에어하트이다)가 됐다.

1930년대 그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를 ‘본부’로 삼고 프리랜스 조종사로 일했다.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사라지는 길이 많은 아프리카에서 비행기의 수요는 절대적이었다. 일감은 끊이지 않았고 밤낮도 없었다. 한밤에 치료용 산소통을 배달하기 위해 출동하는 일은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눙궤라는 곳에서 그에게 산소통이 필요하다고 전보를 친 유럽인 의사는 원주민들과 함께 활주로를 만들어두고 그를 맞았다. 프로펠러 비행기 ‘칸’을 타고 활주로를 이착륙할 때는 풍속과 풍향뿐만 아니라 얼룩말의 돌출 등장을 조심해야 하는 곳이 당시 아프리카였다.

아버지와 농장을 개척하며 말을 조련하던 시절은 그가 아프리카 대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훈련시키던 암말 ‘바미’가 야외로 훈련을 나갔을 때 들판에서 늙은 얼룩말과 벌이는 신경전을 이웃집 여인들의 싸움처럼 관조한다.

어린 시절 그는 아프리카 무라니(전사)들과 함께 맨발로 사냥을 하며 보냈다. 처음에는 창을 들고 다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무라니들이 오직 창만으로 사냥을 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어떤 동물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어떤 길로 다니는지, 얼마나 빠른지, 얼마나 사나운지를 알고 있어야 가능한 사냥이다. 주변에는 딕딕(작은 영양), 표범, 혹멧돼지, 들소, 사자, 들토끼가 너무나 많았다. 젊은 무라니들로부터 잎이 뭉그러진 형태, 배설물의 촉촉한 정도로 동물들의 행적을 추적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아프리카를 정복하려는 유럽 침략 세력의 준동을 보며 아프리카의 저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정복에 나선 이들은 아프리카의 살아 있는 혼을 간과했다. 그들의 정복을 막아내는 힘은 그 혼에서 나온다…많은 종족의 피는 진리만큼 존귀하고 순결하다. 피의 순결성을 놓고 볼 때 후대에 뒤늦게 갑자기 나타난, 강철과 자만심으로 무장한 인종들을…마사이 전사에게, 아니 그 한 사람에게라도 감히 댈 수 있을까.”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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