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시 한번]내 인생을 깨끗이 설거지하다

  • 입력 2009년 3월 28일 02시 59분


◇ 유경의 죽음준비학교/유경 지음/궁리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 지 벌써 한 달하고도 열흘이 넘었다. 지금 와서 그분의 존재감을 새삼 가늠하며 살아 있을 때 어떻게 행복하고 평화롭게 지낼까 하는 화두 하나를 가만히 매만져본다.

우리나라 최초의 ‘프리랜서 사회복지사’인 저자를 알게 된 것은 8년 전이다. 저자가 다른 출판사에서 중년과 노년을 다룬 따뜻한 책들을 펴내는 사이, 우리도 ‘죽음’을 주제로 한 책 몇 권을 꾸준히 출간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만남 죽음과의 만남’,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등을 통해 그동안 제대로 말문도 열어보지 못했던 죽음에 대해, 그 의미와 수용 과정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쯤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문득 저자를 떠올렸다.

저자는 처음에는 한사코 쓰기를 거절했지만 이미 한 기관에서 ‘죽음준비학교’를 3년째 이어오던 터라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는 데는 공감했다.

3개월 정도 두문불출하며 원고를 쓰던 저자는 몸이 많이 아프다며, 힘들다는 연락을 해왔다. 글을 쓰며 울기도 많이 울었단다. 이 책 1부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죽음의 얼굴을, 2부는 자신이 3년 동안 담임을 맡았던 죽음준비학교 이야기를 담았다. 원고를 검토한다며 펴들고 나부터 코끝이 짠해지지 않을 수 없었으니 독자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겠다 싶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1쇄 3000부는 너끈히 소진되고 2쇄를 찍을 줄 알았다. 그러나 책이 통 움직이지 않았다. 이 책이 출간된 지난해 세찬 불황이 찾아와 사회 분위기는 점점 어두워졌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어도 아직 독자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사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처럼 죽음은 피해야 할 무서운 것이 아니다. 언젠가 눈 밝은 독자들이 찾아줄 것이라는, 요즘 시대에 약간은 미련해 보이는 이 생각이 바람으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자의 죽음준비학교 졸업생이 남긴 소감 중에서 귀 기울여 볼 만한 인상적인 말이 있다. “죽음준비 공부를 하고 나니까 인생의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놓은 기분이야. 아주 아주 개운해!”

김현숙 궁리출판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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